시(詩)2012. 10. 31. 06:57

어떤 크리스마스 이브

 

 

배고픔 때문에 일어났다.

냉장고 문을 열어 들어있는 음식을 꺼내

상함의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코를 들이대는 것도 이젠 일상이다.

상하지 않은 것이 확인 된 음식들을 프라이팬에 모아 볶는다.

이름도 없는 볶음밥,

후딱 먹어치웠지만,

속이 편하지 않은 것이 어째 소화제를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나름대로 낭만을 생각했는데,

마음 속에 들어 있는 건 볶음밥처럼 이름 모를

한숨 덩어리들뿐이다.

담배처럼 한 숨만 피우다,

집안이 좀 시끄러우면 괜찮아 질까 하고

보지도 않을 TV를 켰다.

집안을 채우고 있는 한 숨 소리와 TV 소리를 헤치며

이리저리 집안을 서성이면서 할 일을 찾아보았다.

어질러져 있는 방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손을 대기 싫었다.

이런 날은 사람 냄새가 나야 하는데,

방을 깔끔하게 치우고 나면,

어쩐지 사람 냄새가 가실 것 같아서였다.

햇살만이 창문을 통해 나를 찾아왔을 뿐,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기 예수를 맞으러 온 세상이 해를 넘어가고 있을 때쯤,

하루 종일 울리지 않은 전화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전화를 들어 내가 누른 건,

전화 번호가 아니라

볶음밥처럼 이름 모를

그리움이었다.

 

사람들은 잘 있는 것 같다.

소화제나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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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