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5
아버지,
제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은
교회 봉고차에서
아버지가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면서부터입니다.
계절은 기억 나지 않지만
중학교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말죽거리 도로변에 봉고차를 주차해 놓고
아버지는 잠시 일을 보러 가셨죠.
할 일이 없었던 저는
라디오를 돌리다가 클래식 채널에서 멈춰서
현악기의 선율에 매료되었습니다.
무슨 곡이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 그 느낌만은 기억합니다.
클래식 선율이
잔잔한 마음에 파동을 일으킨 것이죠.
가슴이 뛰었습니다.
마구 뛰었습니다.
멜로디와 화음,
그리고 소리.
마음이 그것을 기억합니다.
그때부터 내 마음은
곱지 않은 것
조화롭지 않은 것
아름답지 않은 것에는
눈과 귀를 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홀수보다는 짝수를 좋아하게 됐고
네모보다는 동그라미를 좋아하게 됐고
독창보다는 합창이 좋아졌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베토벤 교향곡 9번 5악장 합창이
마음 속에서 연주됩니다.
아버지는 저를 외롭지 않게 하셨던 또 제 옆에 계셨던 짝수요
세상을 둥글게 바라보게 하셨던 동그라미요
사람들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게 하셨던 합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제게
“환희”입니다.
아버지,
오늘도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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