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2012. 10. 31. 07:02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5

 

아버지,

제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은

교회 봉고차에서

아버지가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면서부터입니다.

계절은 기억 나지 않지만

중학교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말죽거리 도로변에 봉고차를 주차해 놓고

아버지는 잠시 일을 보러 가셨죠.

할 일이 없었던 저는

라디오를 돌리다가 클래식 채널에서 멈춰서

현악기의 선율에 매료되었습니다.

무슨 곡이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 그 느낌만은 기억합니다.

클래식 선율이

잔잔한 마음에 파동을 일으킨 것이죠.

가슴이 뛰었습니다.

마구 뛰었습니다.

멜로디와 화음,

그리고 소리.

마음이 그것을 기억합니다.

그때부터 내 마음은

곱지 않은 것

조화롭지 않은 것

아름답지 않은 것에는

눈과 귀를 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홀수보다는 짝수를 좋아하게 됐고

네모보다는 동그라미를 좋아하게 됐고

독창보다는 합창이 좋아졌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베토벤 교향곡 9 5악장 합창이

마음 속에서 연주됩니다.

아버지는 저를 외롭지 않게 하셨던 또 제 옆에 계셨던 짝수요

세상을 둥글게 바라보게 하셨던 동그라미요

사람들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게 하셨던 합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제게

환희입니다.

아버지,

오늘도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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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