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4. 1. 26. 23:10

예수를 따르라

(마태복음 4:12-25)

 

예수님의 사역은 광야에서의 시험이 끝난 후, 세례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과 함께 시작됩니다. 개구리가 크게 도약하기 위해서 몸을 움츠리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우선 고향인 갈릴리 나사렛으로 물러나셨다가,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시는데,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서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그곳으로 아예 이사를 가십니다.

 

 

문학 용어에 복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나중에 터질 사건에 대해 암시하는 부분을 말합니다. 세례 요한이 잡혔다는 이야기는 복선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예수님도 잡히게 될 거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신 곳인 가버나움은 인구 1000명 정도 되는 마을이었습니다. 그곳은 갈릴리 바다 북서쪽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곳의 주민들은 농사를 짓거나 고기잡이를 통해서 생계를 이어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받으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권력이 있거나 부자들과 함께 살지 않으시고, 그냥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서 사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예수님 당신의 사역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가버나움은 역사적으로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에 속한 마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그곳은 이방인들의 갈릴리라고 불렸는데, 로마에 의해서 점령 당했을 뿐만 아니라, 그곳을 통치하는 유대 지도자도 로마의 꼭두각시에 불과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 당시에 그곳을 다스리던 유대 지도자는 헤롯 안티파스라는 분봉왕이었는데, 그는 잔인하기로 유명했고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하여 폭정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니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그곳에서 고통 받으며 사는 사람들에게 해방과 빛과 생명을 선포하기 위해서 그곳으로 들어가셨던 것입니다.

 

억압과 폭정이 난무하는 곳에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17). 이는 앞서 32절에서 세례 요한이 선포한 말씀과 같습니다. 그런데 내용적으로는 같지만 상황은 매우 다릅니다. 요한은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예비한 길로 온 바로 그이였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통치를 예비한 사람이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한 분이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의 개념은 장소의 개념이 아닙니다. ‘통치의 개념입니다. 이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천국이 장소의 개념이면 천국을 죽어서 가는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며 죽는 것이 낫다는 허무주의에 빠지겠지만, 천국이 통치의 개념이라는 것을 유념한다면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으면, 바로 지금 이곳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오해되는 개념 하나가 또 있습니다. 바로 회개하라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회개를 단순히 사과하는 것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쓰이고 있는 회개(metanoea, 메타노이아)’의 의미는 돌아서라(turn around)’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단순히 후회하고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것이고 행동과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첫 번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시몬(베드로)과 그 형제 안드레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해변을 거니시다가 시몬과 안드레 형제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라라고 부르십니다. 그러한 부르심에 시몬과 안드레는 어떠한 질문도 제기하지 않고, “곧 그물을 버려 두고예수님을 따릅니다.

 

두 번째 장면도 마찬가지 입니다. 해변을 더 거니시다가 이번에는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만납니다. 그들에게도 동일한 일이 벌어집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즉시 아버지를 버려두고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첫 번째 장면은 새로운 삶으로의 부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새로운 삶은 고기를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의 삶입니다. 두 번째 장면은 새로운 공동체로의 부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문화 풍습으로 봤을 때 이것은 혁명적인 일입니다. 가족 공동체를 떠나, 예수의 공동체가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부르심에 대한 철저한 순종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는 새로운 삶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제자도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나서는 것인데, 예수님께서 어디를 가시든 그의 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하여 그 길을 따라나선 이들은 그 길을 걸으면서 쉽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에게 조명을 비추면서 마태복음을 읽어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예수님을 이해하고 예수님께 순종하는데 수도 없이 실패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통 가운데 기도하실 때에도 저만치 떨어져서 잠자고 있었고, 예수님이 체포 당하셨을 때 도망쳤고, 심지어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간에 가는 길이야 어쨌든 끝이 중요한 것인데, 마태복음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보면 좌충우돌 하던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 부르심의 뜻에 합당한 삶으로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은혜 되는 것은 제자들의 삶이 드라마틱 하게 변하게 되는 상황이 예수님을 처음 만난 갈릴리에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287절을 보면 예수님의 무덤에 갔던 마리아 일행이 천사를 만나 메시지를 듣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메시지가 놀랍게도 이런 메시지였습니다.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제자들은 도망쳤지만,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망친 제자들에게 다시 말씀하시는 겁니다. “회개하라!” , “방향을 돌려라, 방향을 돌려 처음 시작했던 곳으로 되돌아 오라!” 그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갈릴리였습니다. 그들은 실패했지만, 다시 한 번 갈릴리에서, 실패한 바로 그곳에서, 다시 한 번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통치가 어떤 것인지, 하나님의 통치에 의해서 형성될 새로운 삶, 그리고 새로운 공동체가 어떤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침 가운데, 복음 선포 가운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 주시는 가운데,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추었다는 말씀을 실현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오늘,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예수님께서는 삶의 방향을 틀어서 당신을 따르라고 우리를 부르시고 초청하십니다. 바로 여기가 갈릴리입니다. 혹시 본인이 지금 갈릴리에 있지 않다고 생각되시는 분은 먼저 갈릴리로 가신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부지런히 갈릴리로 가십시오.

 

마음이 어두우십니까?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 나아오십시오. 그 어두움이 물러갈 것입니다.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 때문에 삶이 고달프십니까? 하나님의 통치, 즉 천국을 실현하신 예수님께로 오십시오. 오늘 말씀 24절을 보십시오.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리고 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새로운 삶, 새로운 공동체로 방향을 트셨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처럼 세상에 나아가 하나님의 통치를 보이십시오. 억울한 자, 눌린 자, 가난한 자, 슬픈 자, 외로운 자, 병든 자 등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자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십시오.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셔서 그들을 자유케하시고 빛을 주시고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십시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따라갑시다. 예수님을 따라 가면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선포합시다. “회개하라 천국이 임하였느니라!”

 

억울한 자, 눌린 자, 가난한 자, 슬픈 자, 외로운 자, 병든 자들

그들 모두 우리를 기다리고 있네 우리의 사랑 애타게 기다리고 있네

우린 그들 사랑한다 말하면서도 그들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네

우리 그들 사랑할 때 주님 기뻐하시네 그들 우리의 형제니

 

어린이, 노인들, 청소년, 약한 자, 강한 자, 있는 자, 없는 자

자신의 고통 속에 모두 울고 있네 주님의 구원 애타게 기다리고 있네

주님 바로 그들 위해 죽으셨건만 아직도 그들 모르고 있네

우리 주의 사랑으로 사랑할 때에 그들도 그 사랑 알겠네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우릴 심판하시리 우리의 믿음 우리의 사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으로 우리에게 갚아 주시리

 

~ 사랑하세 주의 사랑으로 사랑하세 주의 사랑

주님 우리를 통해 그들을 구원하시리

주님 우리를 통해 이 땅을 고쳐 주시리

/ 사랑하세, 최덕신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