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8. 11. 8. 05:23

우리는 기억으로 연결된다

(룻기 1:1-21)

 

현대인들이 앓는 병 중 가장 무서운 것 중 하나가 치매이다. 치매는 기억이 지워지는 병이다. 뇌를 다친 환자에게도 치매가 온다. 어떤 이는 기억이 사라지는 현상을 내 머리 속의 지우개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치매는 참 비참한 병이다. 자기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 존재가 존재인 이유는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기억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슬픈 일일 뿐만 아니라 생사를 결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가장 멍청한 사람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가장 못된 사람이 기억을 지우려 하는 사람이다.)

 

치매에 걸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한 가지 요인만 작용하지 않는다. 그 중에서 노화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현대인에게 치매병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현대인의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치매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은 외로움이다. 현대인에게 치매병이 많이 발생하는 또다른 이유는 현대인의 외로움때문이다.

 

외로움은 자유의 가치와 거기서 파생되는 개인주의의 가치가 낳은 부작용이다. 자유와 개인주의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말 좋은 가치고, 최고의 가치 중 하나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자유를 잘 이용하지 못한다. 자신의 자유를 가지고 상대방과 연결되는 데 쓰기보다는 상대방과 단절하는 데 쓴다. 그러다 보니, 외로움이 발생하고, 그 외로움은 기억을 죽인다. 기억이 죽은 존재는 더 이상 존재가 아니게 된다.

 

전도서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도서 12:1-2).

 

시편은 이런 말을 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 1:1-2). 전도서나 시편이나 지혜서로 불리는 성경책이다. 지혜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다. 악인들과 오만한 자들은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는다. 악인들과 오만한 자들은 하나님과 연결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의인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연결되기 위해서 주야로 율법(하나님의 계시)을 묵상한다.

 

룻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룻기 1:1). 여기서 그 땅은 가나안 땅이다. 가나안 땅은 그냥 땅이 아니다. 그곳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으로 주신 땅이다. 그 땅은 그냥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땅이다. 그 땅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표지이다.

 

그런데, 나오미의 가족은 그 땅에 흉년이 들자 그 땅을 떠나 모압 땅으로 갔다. 이것은 단순한 이사가 아니다. 그들은 흉년이 일자 그것을 하나님의 부재로 인식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과의 연결을 끊고, 하나님을 떠나 모압(이방땅/이방신)으로 갔다. 그들이 그 땅을 떠났다는 것은 이처럼 단순한 이사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지운 것이다. 이것을 영적 치매라 한다.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니, 나오미에게 죽음과도 같은 일이 발생한다. , 존재가 망각되고, 존재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당시 여인은 스스로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고, 남편이나 아들을 통해서 존재를 증명했다. 나오미에게는 남편이 있었고, 아들이 두 명 있었다. 그런데, 나오미는 하나님과 연결되지 못한 상태가 되니, 자신의 존재를 상실하게 된다. 나오미는 모압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는다.

 

육신의 치매가 무서운 것처럼, 영적 치매는 이렇게 무서운 거다. 존재를 망각한 사람은 생존하기 힘들다. 치매가 발생한 노인은 치사율이 높다. 치매 환자에게 발생하는 또다른 어떠한 병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대개 치매 환자는 사고로 죽는다. 집을 나섰다가 집에 돌아오지 못해 죽고,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 죽는다. 그처럼, 나오미도 이제 꼼짝 없이 죽을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런데, 나오미는 어느 날 이런 소식을 듣는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룻기 1:6). 하나님과 단절되어, 존재의 망각 속에서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살았던 나오미에게 복음이 들려졌다. 그래서 그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나오미는 하나님을 잊고 살았지만, 그러한 나오미의 삶과는 상관 없이,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여전히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 공동체가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발견한다. 인류가 생존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공동체라는 개념 때문이다. 인간 개체는 생존에 관하여 여러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다. 혼자서 오랫동안 생존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인류는 자신과 이질적인 사람(다른 성)과 결혼을 이루는 것이고, 결혼을 통해서 자식을 낳아 가족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공동체의 가장 절대적인 중요성은 공동체가 기억의 저장소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 개체가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어서 자기 자신의 기억의 한계를 뛰어 넘는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치매 환자가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자신의 주변에 기억을 잃지 않은 (가족)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아버지)가 자식을 기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자식은 여전히 어머니(아버지)를 기억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은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아버지)를 돌본다.

 

개체 인간은 자기 초월이 일어나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들다. 자기를 초월해서 생존력을 높일 수 있는 이유는 공동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룻기서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보면, 나오미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져 있었지만, 그가 죽지 않고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에게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오미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하나님을 여전히 기억하고, 나오미가 스스로 관계를 끊어냈던 하나님과 여전히 연결되어 살아가던, ‘공동체가 존재했기 때문에, 나오미는 그 공동체에 다시 연결됨을 통해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


현대인들은 (또는 현대 신앙인들은) 컴퓨터의 기억 장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면서도,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 기억 장치인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자신의 작업을 철저하게 기억해 두기 위해서 좋은 기억 장치, 또는 안전한 기억 장치를 확보하는 일에 열심을 내면서, 위기의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을 보존시켜 줄 기억 장치인 공동체에 너무 소홀한 것 같다.

 

우리가 배우자에게, 자식들에게 충실해야 하는 이유는 매우 실제적(practical)인 것이다. 우리가 기억을 잃어버렸을 때, 그래서 존재를 망각했을 때, 그래서 생명의 위협에 처했을 때, 우리의 생명을 구원해 줄 존재는 여전히 를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해 주는, , 내가 잃어버린 것을 여전히 간직하고 기억하는 배우자,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를 사랑하고 교회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매우 실제적인 것이다. 우리가 영적 치매에 걸려,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존재를 망각하고 불안과 두려움에 처하게 되었을 때, 여전히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과 연결되는 일에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교회 공동체가 있기 때문에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음이 약하여 영적 치매에 걸렸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이유는 공동체 덕분이다.

 

공동체는 개인의 초월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초월 없이 인간은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초월이 없으면 우리는 개인에 파묻혀 죽는다. 초월이 일어나지 않고 개인에 파묻히는 현상이 바로 외로움이다. 그래서 현대인은 외로움 때문에 치매에 걸리고, 자기 존재의 상실로 인해 죽음에 처하게 된다. 아주 비참하게.

 

그러한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 우리는 기억으로 연결된다. 나의 기억이 흐릿하다 할지라도, 공동체 안에 있는 한, 나의 기억이 아닌, 공동체의 기억을 통해 우리는 생명을 보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공동체를 소중하게 여기자. 그 공동체가 때로는 나를 괴롭게 하는 것 같고, 나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같지만, 그래서 귀찮고 떠나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래도 결정적일 때, 즉 내가 기억을 잃었을 때, 나의 생명을 보존해주고 다시 소생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공동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최선을 다해 가정 공동체와 교회 공동체를 지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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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