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와
신앙
(이사야 37:1-20)
히스기야의 아버지는 아하스다. 아하스 왕은 남유다의 12대 왕으로서 남유다의 왕 중 가장 사악한 왕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아하스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사로잡으셨다’이다. 그는 남유다의 12대 왕으로 20세에 즉위하여, 16년간 통치하다 아들 히스기야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아하스 시대는 앗수르가 패권을 차지하고 있던 시대였다. 앗수르에 맞선 반앗수르 동맹에 북이스라엘과 아람이 가세했고, 애굽과 구스가 반앗수르동맹에 중심을 이뤘다. 그런데 아하스는 반앗수르동맹에 가입하지 않고, 앗수르와 친앗수르 정책을 편다. 이것이 아하스 왕이 펼친 국제정치였다.
북이스라엘과 아람 동맹은 눈에 가시 같은 남유다를 침공했고, 아하스는 그들의 침공에 맞서 앗수르에 도움을 청했다. 아하스의 마음에는 오직 앗수르만 있을 뿐, 하나님이 없었다. 그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사 7:14)는 징조를 들었음에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앗수르를 의지했다.
아하스는 바알숭배를 자행했고, 자식을 제물로 바쳤으며, 성전 기구들을 파괴하고,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막았다. 그러한 아하스를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은 주변나라들로 하여금 남유다를 침공하게 하였지만, 아하스는 결국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고 앗수르에게 나라와 영혼을 팔아먹고 죽었다.
하나님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고, 오히려 세속적 힘만 추구했던 아하스의 뒤를 이어 왕이 된 히스기야는 아버지와는 반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만 의지했던 왕으로 기억되고 있다. 아버지가 가장 좋은 선생이지만, 때로는 반면교사가 되기도 한다.
앗수르는 자신에게 의지한 아하스를 오히려 위협하고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댔다. 앗수르는 자신을 의지한 남유다를 도와주기는커녕 더 큰 도탄에 빠지게 했다. 세상 힘이라는 것이 그렇다. 그거이 당장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고,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 같지만, 결국 세상의 힘은 나를 더 도탄에 빠지게 할 뿐이다.
히스기야는 아버지와는 달리 앗수르를 의지하지 않고, 그들의 협박에 굴하지도 않았다. 그러자 앗수르는 백성들을 위협하고 이간질했다. “너희 왕(히스기야)는 너희를 구하지 못한다. 너희의 신은 우리(앗수르)의 신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니, 헛된 너희 왕과 너희 신을 섬기지 말고 앗수르 왕과 앗수르 신을 섬겨라!”
대개 사람들은 위기의 상황에서 이러한 말을 들으면, ‘그런가’하고 현실적인 대안과 현실적인 힘에 굴복한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랍사게를 통한 산헤립의 협박과 위협의 말을 듣고 그 말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다.
살다 보면 위기가 닥친다. 생명과 안위, 평안을 위협하는 위기가 불현듯 닥친다. 그러면 우리는 불안해진다. 불안해진 상태에서 들려오는 주변의 소리는 ‘안돼, 할 수 없어! 네가 살려면 이렇게 해야 해!’하면서 부정적인, 또는 마음을 요동케 하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위기의 상황에 우리는 당장 어디로 달려가겠는가? 누구의 조언을 먼저 구하겠는가? 사람은 습관대로 한다. 히스기야는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히스기야는 위기의 상황에서 성전으로 당장 달려갔고, 선지자의 조언을 구했다. 그의 이러한 영적인 습관이 그를 구했다. 그의 행동이 옳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주신다.
“너희가 들은 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영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소문을 듣고 그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의 고국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6,7절).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씀은 위기의 상황에서 가장 큰 힘이 되는 말씀이다. 랍사게(산헤립)의 위협은 백성들에게 하는 것이었지만, 결국 랍사게(산헤립)가 비웃은 것은 하나님이었다. 랍사게(산헤립)는 하나님을 헛것 취급했다. 그는 자신들이 정복한 수많은 나라를 열거하면서 그들의 신이 자신들의 정복 앞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 것처럼, 이스라엘의 하나님도 그들의 신처럼 헛된 것(우상)에 불과하다고, 하나님을 ‘능욕’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히스기야가 얼마나 정확하게 상황을 꿰뚫어 보고 하나님께 적절한 기도를 드리는 지 알 수 있다. 그의 기도를 쉬운 말로 다시 보자.
그룹 사이에 자리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만이 세상 모든 나라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
여호와여, 귀를 열어 들어 보십시오.
여호와여, 눈을 열어 보십시오.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독하려고 보내온 이 모든 말을 들어 보십시오.
여호와여,
앗시리아 왕들이 이 모든 민족들과 그들의 땅을 폐허로 만든 것을 사실입니다.
그들이 신들을 불 속에 던졌습니다.
그들은 신이 아니라 다만 사람이 손으로 모양 낸 나무와 돌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멸망했습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해 주셔서
세상 모든 나라가 오직 주만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해 주십시오.
(우리말 성경 / 이사야 37:16-20)
랍사게(산헤립)가 몰랐던 사실이 한 가지 있다. 그들이 정복한 나라들의 신은 모두 사람이 손으로 모양 낸 나무와 돌, 즉, 우상(헛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의 신과 같은 우상(헛된 것)이 아니라, 모든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자, 지금도 역사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인에게 위기의 때는 두려워 떠는 시간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언하는 시간이다. 위기의 때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도 히스기야처럼 경건한 마음을 놓치지 않고 우리의 발걸음과 마음이 헛된 것에 가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계신 성전과 하나님의 말씀이 머무는 ‘선지자’(성경/교회)에게 가 있다면,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적절한 말씀을 들려 주실 것이다.
“주여, 우리를 구원하사, 주만이 ‘하나님’이신 것을 천하만국이 알게 하소서!” 우리는 위기의 때에, 두려움 없이, 이 기도를 드릴 줄 알아야 한다. 이 기도가 담대하게 나올 수 있도록, 우리의 영적인 습관을 경건하고 성실하게 잘 다져 놓자.
'바이블 오디세이 I'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씀과 함께 춤을 (0) | 2019.02.01 |
---|---|
예수, 우리의 기쁨 (0) | 2019.01.21 |
지독한 선택 (1) | 2019.01.16 |
함께 가자 (0) | 2019.01.08 |
은혜란 무엇인가 (1) | 2019.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