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1. 12. 26. 04:22

2011 12 25일 성탄 주일 예배 설교

본문: 누가복음 2:22-39

제목: 위로를 기다리는 자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여러 가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예수님이 태어난 지 한 사십일쯤 지나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물론 예수님이지만, 그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 쓰인 두 사람이 나오는데, 한 명의 이름은 시므온이고, 다른 한 명의 이름은 안나입니다. 시므온은 남자고, 안나는 여자입니다. 이것은 누가복음을 읽을 때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인데, 누가복음에서는 어떠한 이야기를 전개시킬 때 남자와 여자가 동시에 나옵니다. 일종의 남녀평등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이 기록될 당시의 세계는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남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시대였는데, 누가복음의 저자는 여자를 남자와 같은 위치에 올려놓고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갑니다. 이것이 누가복음의 특징 중 하나 입니다. 누가복음을 한 번 잘 읽어보십시오. 모든 구조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누가복음의 구조는 아니고요, 시므온과 안나가 노인이었다는 겁니다. 사실 현대 사회에서 노인들은 거의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노인들은 전문적인 직원들이 돌보는 양로원에 보내지지 일쑤입니다. 우리는 자주 노인들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이 자꾸 거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모든 소망이 끊어졌다고 생각하는 그런 노인들에게, 그 누구에게서보다도 더 큰 소망이 있었음을 우리는 오늘 읽어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누가의 기사에서 시므온과 안나는 노인이지만, 그들은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지혜로운 사람들도 그려집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일이 벌어진 곳은 예루살렘이고, 예루살렘 중에서도 가장 북적대는 성전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도시에는 사람들로 북적댑니다. 그리고 자칭 귀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권력자들, 부자들, 젊은이들, 성직자들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사람들 가운데 오직 노인에 불과했던 시므온과 안나만이 부모의 팔에 안겨 성전 뜰로 들어오고 있는 아기 예수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이들 노인이 부모보다도 아기 예수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33절의 말씀에서 예수님의 부모님이었던 요셉과 마리아는 노인의 말에 놀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하나님이 이 노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것은 요엘서에도 분명하게 나와 있는 사실입니다 요엘서 2 28절의 말씀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 임하시면, 꿈을 잃었다고 하는 늙은이가 꿈을 꾸게 된답니다.

 

이런 말씀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설교는 양로원에 가서나 하시지우리는 아직 젊은데…” 우리는 모두 늙어갑니다. 젊음을 자랑할 때가 있었고, 그 젊음이 영원할 것 같았던 때가 있었지만, 결국 우리의 인생은 늙어갑니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상황 속에서, 어떤 사람은 늙어감을 한탄하고, 어떤 사람은 늙어감을 괴로워하고, 어떤 사람은 늙어감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늙어가는 우리의 인생 속에서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시므온과 안나, 이 두 노인들의 삶을 한 번 들여다 보면, 이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소망하고 살았는지를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젊은이에게나, 노인에게나,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삶의 자세입니다.

 

25절 말씀에 보면, 누가복음 저자는 시므온에 대해 이렇게 묘사합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리고 37절에는 안나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위의 요엘서에서 묘사된, 장래일을 말하고 꿈을 꾸고 이상을 보는 일은 아무에게나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의 인생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장래일을 말하고 싶어하고, 꿈을 꾸고 싶어하고, 이상을 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뿐, 그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끔 힘을 쓰지는 않습니다. 마음뿐이고, 힘쓰지 않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은 실망과 절망뿐입니다.

 

그런데 시므온과 안나의 삶은 달랐습니다. 이들은 의롭고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의롭다는 말은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켰다는 말이고, 경건하게 살았다는 말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쓸데 없는 일에 낭비하지 않고, 이웃과 나누면서,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를 돌보며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면서 살았습니다.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는 말은 성전에서 살았다는 말이 아니라, 성전이 그들 삶의 중심이었다는 말입니다. 예배가 삶의 중심이었다는 말입니다. 금식과 기도는 예배의 형태입니다. 이들은 그만큼 성전 드나들기는 자기 집처럼 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살았던 시므온과 안나에게 주어진 것은 바로, 그토록 기다리던 위로였습니다. 시므온의 기도는 눈물이 나게 하는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배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죽기 전에 이러한 신앙고백을 여러분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까? 진정으로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을 받기 전에, 이러한 신앙고백이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머무는 입술에서 흘러나올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컬럼버스 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신앙인입니까? 오늘 설교 제목이 위로를 기다리는 자입니다. 사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기다리는입니다. “위로는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에 이는 분명하게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다림입니다. 시므온과 안나가 하나님께 인정받았던 이유는 그들의 기다림 때문이었습니다. 안나는 나이가 84세였다고 합니다. 결혼한 후 7년 만에 남편을 잃었습니다. 이 여인의 삶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갑니다. 참으로 쉽지 않았을 겁니다. 스므온도 미루어 짐작해 보건 데, 참으로 힘든 세월을 보냈을 겁니다. 그런 가운데서 이들은 끝까지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에게는 기다림이 있습니까? 조바심을 내기 일쑤입니다. 조금 열심히 하다가도 금방 주저 앉습니다. 일생을 두고 끈질기게 하나님의 위로를 간구했던 스므온과 안나와는 달리, 우리의 기다림은 너무도 짧고 견고하지 못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가 우리의 장래일을 말하고, 꿈을 꾸고, 이상을 보는 일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불평하고 불안해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성탄주일이기도 하지만 2011년도 마지막 주일이기도 합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결단이 있어야겠습니다.

 

시므온과 안나처럼 의롭고 경건한 자,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기도하며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이것을 목사가 잔소리처럼 하는, 교회 열심히 나오라는 상투적인 말로 듣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을 직접 눈으로 본 이 두 노인네들의 삶이 얼마나 복됩니까? 이러한 복된 삶이 아무렇게나 살다가 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의롭고 경건한 가운데 살다가 하나님께 이러한 은총을 받았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의롭고 경건하게 사는 사람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나만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 뭐해?’하면서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과 섞이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 그리고 구원이 있는 사람으로 늙어간다는 것,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인생이 짜증으로 가득 차 있고, 위로와 평강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불행합니까?

 

의롭고 경건하게 산다는 것을 너무 거창한 것으로,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지키고 가꾸면 됩니다.

 

우선, 기본적인 십계명부터 좀 지켜보십시오. 1. 다른 신을 섬기지 마십시오. 특히 현대사회의 가장 강력한 신인 돈신 맘몬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지 마십시오. 2. 우상을 만들지 마십시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마음을 쏟지 말라는 말입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마십시오. 하나님 욕먹이는 일, 부끄러운 일을 하지 마십시오. 4.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십시오.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 없이, 다른 일을 하지 마십시오. 무엇을 하고 싶어도, 예배 후에 하십시오. 5. 부모님을 공경하십시오. 여기서 부모님의 헌신과 사랑 그리고 기도 없이 자기 혼자 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고아도 부모님의 해산의 고통 없이는 이 땅에 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님을 극진하게 모시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장수를 약속하셨습니다. 6. 살인하지 마십시오. 칼로 사람을 찌르는 것만이 살인이 아닙니다. 말로 사람의 마음을 찌르는 것도 살인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그리스도인이지 죽이는 살인자가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7. 간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정하신 결혼생활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8. 도둑질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훔치지 마십시오. 9. 거짓 증거하지 마십시오. 없는 말 만들어 내지 마십시오. 아니면 아니오, 그러면 그렇다고만 말하십시오. 10. 남의 것을 탐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만 만족하시고 감사하십시오.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십계명부터 지키는 일, 우리가 평소에 하찮게 여기는 이런 일부터 시작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경건하게 사십시오. 경건하게 산다는 것은 얌전을 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경건하게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러했듯이, 우리 예수님이 그러했듯이,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시간과 물질, 건강과 배움 등, 모든 것을 섬기는 마음으로 이웃과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전을 떠나지 마십시오. 주변 사람들에게 너는 교회가 집이니? 교회에서 사니?”, 이런 비아냥거림을 들을 정도로 교회를 가깝게 하십시오. 교회를 가깝게 하면서 감내라 콩내라참견하라는 말씀도 아니고, 교회에 모여 수다 떨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교회를 내 집 드나들듯이 드나들면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목사보다 기도 많이 하는 성도님이 나왔으면 좋겠다.). 교회에서 드리는 모든 공예배에 참석하도록 노력하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모든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모든 것은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기 위한 것들입니다. 자녀가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교회에서 제공하는 모든 것은 떡이고 생선입니다. 때로는 여러분이 그것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일은 있을지언정, 돌과 뱀을 받아 드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우리는
2011년 성탄절 예배 그리고 2011년도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중대한 말씀을 받아 들었습니다. 우리의 결단만이 남아 있습니다. 더 이상 꿀 꿈이 없다고 생각하는 노인이었던 시므온 할아버지와 안나 할머니에게서 우리는 그 누구도 꾸지 않고 있던 꿈이 그들의 삶 속에 꿈틀거리고 있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그러한 꿈을 꾸면서, 인내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를 끝내 받아 들었다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도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한, 우리의 소망은 결코 끊어지지 않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 있으셔도, 끝까지 인내하시면서 기도하십시오. 경건함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십시오. 그런 사람은 분명 시므온과 안나처럼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약속을 꼭 지키시는 분입니다. 의롭고 경건한 가운데 사셔서, 날마다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을 눈으로 보는 복된 인생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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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