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1. 12. 12. 22:26

2011 12 11일 주일 예배 설교

본문: 요한복음 1:6-8, 19-28

제목: 내가 증거자 요한이다

 

우리는 세례 요한 John the Baptist’라는 명칭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요한에 대해서 매우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요한을 세례 주는 자로만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왜 세례를 주었습니까? 요한이 세례를 준 이유는 임박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임박한 하나님 나라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것을 무슨 정치적 상황이나 장소로 이해하기 쉽지만, 그것은 한 인물에 관한 것입니다. 그 인물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던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세례 요한이라는 명칭보다는 증거자 요한 John the Witness’이라는 명칭으로 불려져야 마땅합니다. 물로 세례를 주었던 증거자 요한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살았습니다. 물 세례와 성령 세례는 다릅니다. 그러나 물 세례 없이 성령 세례가 임하지 않습니다. 물 세례는 회개를 의미합니다. 물 세례 없이 성령 세례가 없다는 뜻은 회개 없이 성령 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머리에 물을 붓는(또는 몸을 물 속에 담갔다 올리는) 세례의식은 종교적 퍼포먼스가 아닙니다. 이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존재의 전향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머리에 백 번 물을 부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신실한 기독교인이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례의식이라는 종교적 퍼포먼스는 얼마든지 행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함께 일어나는 그리스도를 향한 존재의 전향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 교회에서 행해지는 세례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세례의식이 절기(부활절, 성탄절)마다 베풀어지긴 하지만, 존재의 전향은 세례의식을 베푸는 만큼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세례를 통해서 존재의 전향’, 즉 회개가 일어나면 그 때 성령세례가 베풀어집니다. 이것은 시간 상으로 또는 절차 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닙니다. 칭의와 성화가 시간 상으로, 절차 상으로 구분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편의상의 구분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세례는 또 무엇입니까? 한국 교회는 성령세례에 대한 오해가 편만합니다. 이것도 부흥회 신앙에서 비롯된 것인데,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 콧물 다 빼면서 토해낸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성령세례라고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거기다 한국인은 워낙 감정이 풍부한 민족이라 이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가 없으면 무엇인가 신적 체험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령세례는 감정의 카타르시스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눈물 콧물 빼내며 겪는 감정의 카타르시스는 나훈아, 남진 오빠의 디너쑈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성령세례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능력이 주어지는 겁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능력은 증거자 요한처럼 나는 아니다라는 자기부정의 능력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요한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증언하러 온사람이라고 합니다. 무엇에 대한 증언이냐 하면, ‘에 대한 증언을 위해서 온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통하여 그 을 믿게 하게 하기 위해서 왔다고 합니다. 요한은 빛을 증언하러 온 사람이지, 그 빛이 아니라고 복음서 저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증거자 요한이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보내서 예루살렘에서 온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요한에게 와서 묻습니다. “네가 누구냐?” 이는 단순한 질문이 아닙니다. 정체를 밝히라는 질문입니다. 이들은 요한이 그들이 기다리는 그리스도 또는 엘리야가 아닌지 의심했습니다. 이들의 질문에 요한은 당당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대답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엘리야가 아니다.”

 

이 대답이 쉬워 보이지만,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대답이 아닙니다.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을 일컬어 우리는 이라고 부릅니다. 연예인들을 다루는 기사에서 우리는 이러한 문구를 자주 접합니다. “자체 발광, 아무개 스타이처럼 인간은 스스로 빛나고 싶어합니다. ‘스타가 되고 싶어 합니다. “나는아니다가 아니라 나는이다가 되고 싶어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보내서 예루살렘에서 온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요한에게 지금 이렇게 묻고 있는 겁니다. “당신이 빛이오? 당신이 별(스타)이오? 당신이 그리스도요?” 보통 사람 같으면 그 질문에 우쭐해서 그렇다고 대답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빛으로, 스타로 살아가려 했을 겁니다.

 

세상은 사람들에게 이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을 부추깁니다. 이렇게 하라고 꼬드깁니다. 우리보고 “‘이 되라 하고, 우리 보고 스타가 되라.”고 합니다. 이것은 태초부터 있어왔던 인간에 대한 유혹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것도 바로 아담과 하와에게 빛이 되라 하고 스타가 되라.”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게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라”( 3:5). 스스로 지혜 있는 자가 되어(스스로 빛이 되어), 하나님 없이도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라는 꼬드김이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이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삽니다. 그래서 그것을 원죄라고 합니다. 이 세상은 여전히 그러한 유혹을 부추기는 시스템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타락했다고 하는 겁니다. 지금 제가 연예인이 되는 것은 나쁜 것이다. 그것은 타락한 일이다.”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을 하라고 부추기는 이 세상을 고발하는 중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보내서 온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꼬드기던 뱀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던 마귀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꼬드김과 시험에 굴하지 않고 증거자 요한은 당당하고 솔직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아니오!” 그리고 그는 자기 뒤에 올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일컬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소개합니다.


존재의 전향이란
, 성령세례를 받는 일이란 바로 이런 겁니다. 그리스도의 증거자가 되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나는아니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그의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증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빛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빛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빛날 수 있는 분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빛이신 그리스도에게로 향하는 일이 회개(존재의 전향)이고 그것이 바로 성령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빛이신 그리스도에게로 향한 그리스도인은 분명 그 빛을 받아 그 빛을 반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천체에서 그것을 확인합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도 태양으로부터 빛을 받아 그 빛을 반사합니다. 지구의 행성인 달도 태양으로부터 빛을 받아 그 빛을 반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까만 밤에 태양빛을 반사하는 달을 볼 수 있는 겁니다.

 

빛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습니다. 눈이 시력을 갖는 이유는 빛 때문입니다. 빛이 없는 곳에서는 눈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주 작은 불빛이라도 있으면 눈은 금방 그 빛에 적응해서 물체를 보게 만듭니다. 잠자리에 들기 위해 형광들을 껐을 때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경험을 해 보셨을 겁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이나, 방 안에 있는 작은 불빛에 적응해서 다시 보이게 되는 경험을 해보셨을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밤낮으로 바라보며 그분의 빛을 이 세상에 반사시켜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빛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태양처럼 밝게 빛나지는 않지만, 망망대해의 등대처럼 자그마한 불빛이 될 수는 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세상일수록 희미한 불빛은 더 빛나는 법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패배의식에 사로잡힐 때가 많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뭘…’, ‘나처럼 신앙생활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어.’ 자기 자신의 초라한 신앙의 불빛을 보며 의기소침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작은 불빛이 이 칠흑같이 어두운 세상을 밝혀 이 어두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눈을 보이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빛나는 별이신 그리스도께서 오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큰 빛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환하게 비추시는 빛이십니다. 그분이 오시는 날에는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얼굴과 얼굴을 대면해서 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힘을 내서 우리의 이 작은 빛을 비추는 일에 힘을 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자가 된다는 것은 이 작은 빛을 세상에 비추는 것입니다. 내가 바로 증거자 요한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증거자 요한만이 증거자 요한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는 모두 증거자 요한입니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