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대한 루터의 생각]
"신학서적의 수도 역시 감축해야 하고 그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만 선정해야 합니다. 많은 책이나 다독이 사람들을 유식하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아무리 그 수가 적다고 할지라도 좋은 책을 자주 읽은 것이 우리로 하여금 성서에 통달하게 만들고 경건하게 만듭니다. 실로 모든 거룩한 교부들의 글들은 성서로 인도를 받기 위해 잠시 동안만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만을 읽고 거기에 열중해서 성서에는 결코 이르지 않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도표만 조사하고 여행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과 같게 됩니다."
(독일 민족의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 중에서)
독서에 대한 루터의 생각에서도 루터의 종교개혁의 제 1 원리인 'sola scriptura(오직 성서)'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다독보다는 숙독을 중요시한다. 한 권을 책을 여러 번 읽어 숙독하는 것이 여러 권을 한 번 읽고 마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독서하는 데 있어 중요한 통찰이다.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좋은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게 낫다. 훨씬 낫다.
그러나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독서의 방법이 아니라, 독서의 이유이다. 왜 독서를 하는가? 독서는 성서의 통달을 위하여, 그리고 성서의 통달을 통한 경건을 위하여 해야 하는 '영적인 행위'인 것이다.
이후 전개되는 루터의 주장은 매우 흥미롭고 도전적이다. "성서 연구가 중심 과제가 되지 않는 대학에는 아무도 자기 자녀를 보내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신의 말씀을 부단히 탐구하지 않은 대학은 만사를 틀림없이 타락시키고 맙니다."
루터의 이 말을 들으며, 한국의 대학들을 떠올려본다. 일반 대학은 둘째 치고, 기독교 대학들을 떠올려 보면, 참담하기 그지없다. 성서 연구가 중심이 되는 대학이 어디에 있나. 연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가 기독교 대학으로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나. 기독교 대학에서 근무하는 교수들과 임직원들이 루터의 이 글을 진지하게 읽는다면, 기독교 대학의 나아갈 바가 명확해지는 것 아닐까.
지금은 기독교 대학이나 일반 대학이나 '만사를 타락시키는' 기관으로 전락한 것은 아닐까, 반성해 본다. 기독교 대학들은 성서 연구가 중심이 되도록, 그리고 그와 더불어 다른 연구들이 진행되도록 교육과 연구 체제를 공고히 하고,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자녀를 성서 연구가 신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대학에 보내도록 거룩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 대학에 자녀를 보낸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대학이 성서 연구를 중심으로 모든 연구가 진행되도록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쓸데없이 서울대나 고대 같은 대학에 자녀를 보내려고 하지 말고, 연대나 이대 같은 기독교 대학으로 자녀를 보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루터를 읽다보니, 이런 횡설수설도 하게 되고, 좋다.ㅎㅎㅎ
많은 분들이 루터를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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