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과 정치철학의 필요성

 

종교적 신념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신념은 비판적 검토를 필요로 한다. 그 작업을 실행하는 것이 신학이다. 신학은 누군가 고백하고 있는 종교적 신념의 진실성 여부를 검토한다.

 

종교적 신념은 정치행위로 이어진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적인 존재로 세상을 살아가면 정치행위라는 용어가 필요 없겠지만, 두 사람만 모여도 거기에는 정치행위가 발생한다. 자신의 신념이 상대방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 이상 모인 '사회'에는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종교적 신념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정치행위는 또 한 번의 검토를 필요로 한다. 그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정치철학이다. 본디 철학은 진리를 향한 탐구이다. 어떠한 신념에 대하여, 그리고 그 신념을 바탕으로 행하는 행동에 대하여 비판적 검토를 가하는 것이 정치철학이다. 어느 개인의 종교적 신념과 그에 따른 정치행위가 진리인지 아닌지, 그 진실성을 검토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진리가 아닌 것은 '폭력'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의 발전과 성숙의 정도를 보려면 그 사회에서 발화되고 있는 신념과 정치행위에 대한 신학적, 정치신학적 검토의 깊이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종교적 신념에 대한 구호만 난무하고, 그 신념에 근거한 활동만 거창한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지금 한국 사회가 딱 그렇다.

 

몇 가지 예를 들 수 있다. 한국 기독교에는 '성시화운동'라는 종교적 신념이 널리 퍼져 있다. 한 도시를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으로 만들고자 하는 기획이다. 이러한 종교적 신념은 언뜻 보면 성스러운 것 같고 매우 신앙적인 것 같으나, 이러한 신념이 정말로 성스럽고 신앙적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려면 '성시화운동'이라는 종교적 신념에 대한 신학적/정치철학적 논의가 얼마나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면 된다. 그런데, 공신력 있는 논문 게재 사이트(예를들어, DBpia)에서 '성시화운동'에 대한 키워드를 쳐 넣으면, 그에 대한 논문이 거의 없는 것을 발견한다. 이는, 종교적 신념만 있을 뿐, 그것에 대한 진실성의 검토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성시화운동이 기독교인들에게는 은혜스러운 운동이 될지 모르나, 사회 안에서는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한 것이다.

 

요즘 한국 교회를 뒤흔들고 있는 '차별금지법반대운동'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논의가 발생한 것은 몇 년 되었다. 그래서 그 주제의 논문이 어느 정도 발표되었다. 그러나 주로 법학 관련 학회에서 발표되었고, 장애인이나 젠더 문제를 취급하는 연구소에서 논문을 발표하였다. 정작 '차별금지법'을 강렬하게 반대하는 개신교 측에서 발표된 논문은 별로 없다. 그만큼 종교적 신념과 그에 따른 정치적 행위는 활발하게 있지만, 그것의 진실성을 따지는 신학적/정치철학적 검토는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본인의 신념이 곧 진리는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매우 착각하며 산다. 특별히 종교적 신념을 가진 자들에게 이러한 착각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 종교적 신념은 신학적 비판이 이루어져야 하고,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정치행위는 정치철학적 비판이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판적 검토를 전혀 하지 않는 상태에서 신념과 행동이 난무하다 보니, 사회적 혼란만 더 가중시키는 꼴이 되고 만다.

 

종교적 신념과 신앙적 문제들에 대한 진실성의 검토, 정치적 신념과 정치적 문제들에 대한 진실성의 검토는 신학과 정치철학을 통해서 반드시 수행되어야 한다. 성급한 성토와 행위는 '믿음'이 아니라 '폭력'이 될 수 있다. 가뜩이나 소수자로서 이 세상에서 고통받고 사는 자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는 꼴이다. 하나님의 정의를 속히 이루고 싶다면,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을 지연시킬 필요가 있다. 진리가 아니면 폭력이 될 수 있기에,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이 진리인지 아닌지 면밀하게 먼저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런 성숙한 종교와 시민사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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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