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가치

 

민주주의의 가치는 '다양성과 평등'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와 직결된 가치이다.

 

어거스틴은 <기독교 교육론>에서 우리가 사랑해야 할 네 가지에 대하여 말한다. 첫째는 하나님 사랑, 둘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셋째는 이웃 사랑,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는 물질에 대한 사랑이다.

 

이 중에서 두 번째와 네 번째 사랑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우리들이 잘 하는 사랑이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자기 사랑과 물질 사랑을 어떻게 해야하는 지 별로 가르칠 게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열심히 가르쳐 한다. 이 사랑들을 가르치지 않으면, 인간은 자기 사랑과 물질 사랑에 매몰되어 있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소홀해지기 때문이다.

 

성경의 가르침은 거의 모두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것이다. 자기 사랑과 물질 사랑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러한 것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하기 때문이다. 잘 하지 못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하는 성경은 참으로 정의롭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민주주의 가치로 말하면, 다양성과 평등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일신군주론이 아니라 삼위일체론이다. 기독교는 신론 자체가 다양성(diversity)과 평등(equality 또는 unity)을 함의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이 너무 자기 사랑과 물질 사랑에 매몰되어 있다보니, 다양성과 평등을 공부하고 연마하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가치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핵심 가치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를 실현하는 일은 단순히 정치적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신학적 가치의 문제를 아우른다. 기독교인에게 있어 하나님을 깊이 알아간다는 뜻은 민주적 가치를 깊이 체득하여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뜻과 같다.

 

우리는 생득적으로 자기를 사랑하고 물질을 사랑한다. 그러다 보니, 다양성을 불편해 하고, 평등을 싫어한다. 내가 누리는 풍요를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을 싫어한다. 자기 사랑과 물질 사랑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 하는 바로 그러한 사랑에 흠뻑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생물학자는 그러한 현상을 일컬어 '이기적 유전자'라고 부르는 지 모르겠다. (물론 그는 무신론자이지만.)

 

판넨베르크가 지적하듯이, 자기 사랑과 물질 사랑에 몰두하는 것을 기독교적 용어로 '교만(자기집중)'이라고 부른다. 인생은 자기 집중, 교만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싸움에서 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위선이 없다.

 

믿음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당 가는' 도그마 또는 선동이 아니다. 믿음은 자기집중에서 벗어나, 배우지 않으면,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잘 안 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몸으로 체득하는 것, 그 자체이다. 그래서 '믿는다는 것'은 일생을 걸어야 하는 지난한 영적 싸움이다. 그렇게 해서 일구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이고, 그 하나님 나라가 바로 다양성과 평등이 하수같이 흐르는 나라이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