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이야기를 상실한 시대]
지금 시대는 큰 이야기(거대담론)를 상실했다. 대표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기는 '건물주'에 대한 이야기지, '조물주'가 아니다. 건물주는 작은 이야기다. 조물주는 큰 이야기이다.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 '조물주' 이야기는 사람들 입에서 나오지 않고, '건물주' 이야기만 나온다.
TV 예능이 그것을 매우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예전의 예능, 특별히 코미디 프로그램은 코미디 형식이었지만 그 내용은 '큰 이야기'들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등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그러나 요즘 예능은 육아예능이나 가족예능, 그리고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공개하는 프로그램이 대세이다.
코미디 프로그램이 지상파에서 모두 폐지된 것은 당연하다. 코미디언들의 자리가 없어진 것은 프로그램이 폐지되어서가 아니라 사회에서 '큰 이야기'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작은 이야기와 큰 이야기가 공존해야 한다. 큰 이야기가 너무 압도하면 작은 이야기가 억압을 당하고, 작은 이야기가 너무 편만하면 큰 이야기가 사라져버린다. 작은 이야기가 없으면 자유와 평등이 없고, 큰 이야기가 없으면 진리와 정의가 없다.
작은 이야기만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면 개인이 중요해지고, 큰 이야기만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면 개인이 없어진다. 인간 사회에서 개인만 중요해지는 것도 건강하지 못하고, 개인이 없어지는 것도 건강하지 못하다. 개인과 공동체는 언제나 상호보완적이다.
그러므로 요즘 시대는 작은 이야기보다 큰 이야기를 하도록, 훨씬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시대이다. 그러한 균형은 종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설교자들의 설교가 작은 이야기로 흐르면 안 되고 큰 이야기들을 담아내야 하는 시대이다. 문제는 큰 이야기를 담아내려면 거시적인 안목이 필요한데, 거시적 안목은 하루 아침에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랜 공부를 통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필요한 설교자는 선비처럼 엉덩이 붙이고 앉아 진지하게 공부하는 설교자이다.
여러분, 그만 돌아다니고, 엉덩이 붙이고 앉아 공부합시다.
'파루시아를 살다(신학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인문학 공부를 해야 하는가 (2) | 2020.09.05 |
---|---|
정치신학: 나의 전공 (1) | 2020.09.03 |
기독교 종말론: 같은 시공간, 다른 차원 (0) | 2020.09.03 |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한국 개신교 (0) | 2020.08.30 |
문재인 정부의 무지인가 실패인가 (0) | 2020.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