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07'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6.04.07 칠병이어 이야기와 배고픈 목사 1
  2. 2016.04.07 마흔 고개
  3. 2016.04.07 존재의 이유
  4. 2016.04.07 도마뱀의 탄식 1
  5. 2016.04.07 나는 죽어서 빛이 되고 싶어
  6. 2016.04.07 고흐의 그림을 봤다 1

칠병이어 이야기와 배고픈 목사

 

이 탐욕의 시대에 목사는 참 배고픈 사람이다. 탐욕이 샘솟을 때, 나는 번민하게 된다. 탐욕을 부추기는 '광고'들은 마치 사탄 같다. 그러나 나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 탐욕에 마음을 빼앗기고 굴복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래서 다행이다. 너무 멀리 떠나와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어, 더 이상 나에게 탐욕이 작용하지 않는다.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무리들을 먹이시는 이야기가 두 개 나온다. 하나는 '오병이어' 이야기, 다른 하나는 '칠병이어' 이야기이다. 나는 이 두 이야기 중 '칠병이어'의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바로 이 구절 때문이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서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8:2-3).

 

마가복음 6장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이야기에서 무리들은 그저 해가 저물어 배가 고팠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마음만 먹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칠병이어의 이야기에서 무리들은 예수를 따라다니느라 며칠씩 굶었고, 너무 멀리, 광야까지 따라 나왔기 때문에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나는 칠병이어 이야기에서 예수를 따라 광야까지 나온 무리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나도 어쩌다 보니 (물론 부르심에 의해서 그렇게 된 거라는 신앙고백이 있지만) 예수를 광야까지 따라 오게 됐다. 이젠 너무 멀리 떠나와서 되돌아 갈 수도 없다. 이제, 이 나이에, 내가 목사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다른 것을 한들 그것이 나에게 무슨 기쁨과 유익을 주겠는가.

 

광야까지 따라 온 무리들에게 오직 희망은 예수 외에는 없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품은 희망을 꺾지 않으시고,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떡 일곱 개와 생선 두 마리를 통해 그들을 배불리 먹이신다. 일곱 광주리가 남을 정도로 넉넉히 먹이신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곳까지 와 있어, 이 탐욕의 시대에 탐욕조차도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는 신세에 처해진 나 같은 사람에게 칠병이어의 말씀은 힘이요 능력이 될 수 밖에 없다. 아니, 더 이상 돌아갈 수 없기에 이 말씀이 힘이요 능력으로 다가오는 것이리라.

 

우리의 인생이 그렇지 아니한가. 돌아갈 수 있는 곳까지만 따라 나선다면,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힘들고 어려워 애굽의 고기가 생각나서 다시 돌아가겠다고 패악을 저지르는 것과 무엇이 다른 인생을 살겠는가. 어차피 길 떠난 인생이라면, 돌아갈 수 없는 곳까지 가서 그 무엇도 나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해져, 가는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그 무엇'에게 던지는 것이 멋진 인생일 터.

 

나는 예수를 따르다 돌아갈 수 없는 곳까지 이른 '배고픈 목사'.


Posted by 장준식
시(詩)2016. 4. 7. 00:25

마흔 고개

 

드디어 죽음이 내 등 위에 올라탔다

이제부터는 언덕 아래로 고꾸라지는 거다

그 동안 언덕을 넘지 못할까 봐 얼마나 땀 흘려 왔던가

 

흙먼지가 나랑 같이 뒹군다

이게 시작인 거다

흙먼지랑 친해지지 않으면 안 되니까

 

청춘에게 죽음은 신기루지만

마흔 고개를 넘어선 인생에게는

오아시스다

 

이제 죽음의 샘물을 마시러 가는 거다

눈이 밝아지면

그때 비로소 생명이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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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시(詩)2016. 4. 7. 00:23

존재의 이유

 

너는 거기에 있어.

내가 발견해 줄게.

존재해봐.

존재한다는 건 기적이야.

기적을 포기하는 자는

못다 핀 꽃 한 송이보다 못한 거야.

못다 피더라도

존재했다는 것 때문에

그것은 영원성을 갖게 되는 거야.

그렇기에

하루살이도

태아도

사산아도,

어젯밤 허무하게 죽은

그 아이도,

영원히 살게 되는 거야.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왜 존재하겠어.

존재하는 게

왜 이렇게 힘들겠냐고.

너는 너기에 있어.

내가 발견해 줄게.

더 이상 두려워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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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시(詩)2016. 4. 7. 00:16

도마뱀의 탄식

 

이럴줄 알았으면 잠이나 더 잘 걸 그랬어.

겨울잠 자는 동안

추운지 몰랐고

세월 가는지 몰랐고

세상 변하는지 몰랐어.

그야말로 꿈 속에 살아서

한 숨 쉴 일 없어

팔랑팔랑 거렸어.

나를 깨운 건

지나가는 행인의

재채기였어.

어쩐지 나른했고

어쩐지 코가 간질거리더니

잠에서 깨어보니

아지랭이 춤추는

봄이 온거였어.

꽃내음을 따라

동그란 은신처를 빠져나와

첫발을 세상에 내디뎠는데,

글쎄,

이렇게 덫에 걸려버렸네.

나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어.

꿈이었으면 좋겠어.

아직 잠에서 깬 게 아니라면 좋겠어.

하늘은 저렇게 푸르고

햇살은 이리도 따스한데,

내 몸은 점점 차가워지고 있어.

인생 정말 일장춘몽이네.

나는 지금 덫에 걸린채

비닐봉지에 싸여 쓰레기통에 막 버려졌어.

이럴줄 알았으면 잠이나 더 잘 걸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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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시(詩)2016. 4. 7. 00:11

나는 죽어서 빛이 되고 싶어

 

나는 죽어서 빛이 되고 싶어

별빛도 좋고

달빛도 좋고

햇빛도 좋아

이건 너무 거창한가

그럼

창문에 나부끼는 별 그림자

출렁이는 강물에 새겨지는 달 그림자

버즘나무 밑으로 스며드는 해 그림자

이런 게 되어도 좋아

그림자도 빛이니까

이런 것도 거창하다면

반딧불이 빛이 되면 어때

아이들의 오그린 손바닥만한 빛이지만

한 여름 밤을 다 채우고도 남을 만큼

낭만적이잖아

다만

눈빛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만나본 세상의 모든 눈빛은

슬펐어

빛이 슬프면 안 되잖아

빛은 희망이어야 되잖아

나는 죽어서 빛이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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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시(詩)2016. 4. 7. 00:10

고흐의 그림을 봤다

 

고흐의 그림을 봤다

거기에 사람이 누워 있다

그 사람에게서 물감이 솟아난다

어떤 것은 하늘 색이고

어떤 것은 별 색이고

어떤 것은 나무 색이다

어떤 것은 밝은 색이고

어떤 것은 어둔 색이고

어떤 것은 희미한 색이다

그 사람의 표정이 밝으면

그 사람에게서 솟아나는 물감은

해바라기 꽃이 되고

그 사람의 표정이 어두우면

그 사람에게서 솟아나는 물감은

별이 빛나는 밤이 된다

고흐의 그림에서 사람을 봤다

이제 보니 고흐는

그림을 그린 게 아니라

사람을 그린 것이다

그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슬프지만 따스하다

그래서 고흐의 그림은

찬란한 휴머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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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