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이 아니어도 괜찮아
ㅡ 진짜 중심은 어디인가
모든 강물이 바다를 향해 흐르듯, 사람들의 마음은 언제나 '중심'을 향해 요동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화려한 불빛이 꺼지지 않는 곳, 목소리 큰 사람들이 모여 지도를 그리는 곳, 그리고 안전과 성공이 보장된 것만 같은 그 핵심부로 진입하기 위해 평생을 분투합니다. 서울의 고층 빌딩 숲이든, 직장의 핵심 부서든, 혹은 누군가의 기억 속 가장 소중한 자리든, 우리는 그 '중심'에 서 있지 못할 때 형언할 수 없는 소외감과 불안을 느낍니다. 마치 주류에서 밀려난 듯한, 이제는 인생의 무대 뒤편으로 사라져가는 듯한 그 쓸쓸한 기분 말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잔인한 공식을 주입합니다. 1등만을 기억하고, 성공한 인생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속삭입니다. 이런 악마 같은 세상의 논리는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듭니다. "나는 지금 중심인가, 아니면 변방인가?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지워져도 상관없는 존재인가?"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그 '중심'은 과연 영원한 것일까요? 우리가 '가짜 중심'을 쫓느라 정작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의 역설: 변방에서 시작되는 기록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역대기의 기록은 세상을 향해 아주 낯설고도 강력한 질문을 던집니다. 보통의 역사서가 승리자의 화려한 영웅담으로 시작하는 것과 달리, 역대기는 예루살렘의 견고한 성벽 안쪽이 아니라 요단 동편이라는 '변방'의 이야기를 길게 나열합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 그들은 이스라엘 역사 내내 중심이 아닌 경계선에 서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성전과 멀었고,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피를 흘리며 방패막이가 되어야 했던 소외된 이들이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바로 이 '변방의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호명하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불안을 이기지 못해 우상을 숭배했고, 결국 앗수르에 의해 가장 먼저 포로로 끌려가는 비참한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세상의 역사책이라면 수치스럽게 여기며 지워버렸을 그 실패자들의 이름을, 하나님은 역대기의 계보 속에 꼼꼼하게 새겨 넣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억법이 세상의 논리와 전혀 다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과나 위치를 기억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의 '관계' 그 자체를 기억하십니다.
진짜 중심은 어디인가: 시선의 머묾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에 직면합니다. "그렇다면 진짜 중심은 어디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힘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예루살렘 성전의 화려한 뜰이 정말 중심일까요? 구약의 선지자들은 끊임없이 그 통념을 뒤흔들었습니다. 하나님은 화려한 종교 의식이 거행되는 성전 안에서만 머무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성전 밖, 소외되고 낮은 자들, 가난하고 마음이 찢긴 자들 곁에 계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 하나님의 마음이 닿는 곳,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가 강림하는 바로 그 자리가 우주의 '진짜 중심'입니다. 세상이 "너는 이제 끝났다"라고 선고하며 밀어낸 그 변방이, 실상은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뜨겁게 일하는 핵심부가 됩니다. 세상이 중심이라 부르는 곳이 탐욕과 교만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곳은 영적인 황무지에 불과하지만, 비록 척박한 광야라 할지라도 그곳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린다면 그곳이야말로 온 세계의 중심인 것입니다.
십자가, 가장 처절한 변방에서 피어난 중심
이러한 '중심의 역설'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당시 사회에서 가장 흉악한 죄인이 처형되는, 도시 밖 가장 낮은 곳, 즉 철저한 변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실패의 자리, 저주의 자리라고 부르며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참하고 외로운 그 변방을 온 우주의 중심으로 바꾸셨습니다.
우주에서 가장 변방처럼 보였던 십자가가 죽음을 생명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구원의 심장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삶이 누구의 시선 안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중심에 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스스로를 소모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이미 '중심'으로 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중심을 확장하는 공동체로의 초대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붙여왔던 세상의 이름표를 과감히 떼어내야 합니다. "실패자", "밀려난 사람",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꼬리표는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소중한 백성이며, 그분의 생명책에 기록된 주인공들입니다.
나아가 우리가 꿈꾸는 공동체는 세상의 중심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교 클럽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기억을 확장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필요 없다고 지워버린 이름들을 다시 불러주고, 화려한 곳으로 달려가는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기꺼이 외로운 이들이 서 있는 변방으로 걸어가는 공동체 말입니다. 실패한 이들을 비난하는 대신 그들을 하나님의 따뜻한 이야기 속으로 다시 초대할 때, 우리는 이 땅에서 천국의 실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변방에서 피어나는 행복
사랑하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서 있는 곳이 화려한 예루살렘이 아니어도 정말 괜찮습니다. 당신의 인생이 척박한 요단 동편의 광야 같을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세상은 당신의 순위와 성적표를 보지만, 하나님은 당신이라는 존재 그 자체를 끝까지 기억하십니다.
중심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실패했어도 결코 끝이 아닙니다. 당신은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변방에서도 우리를 주목하고 계시는 그 신실하신 하나님의 시선을 믿으며, 오늘 당신이 발을 딛고 선 그 낮은 자리에서부터 감사와 사랑의 향기를 피워내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그곳이 바로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진짜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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