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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1.06 남기기 위해 버리기
  2. 2019.11.06 [시론] 허수경의 시 '라일락'

남기기 위해 버리기

 

곤도 마리에(Kondo Marie)를 아세요? 넷플릭스에서 그녀를 앞세운 프로그램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Tidying Up With Marie Kondo>를 통해 일약 세계적 스타가 된 일본 여성이에요. 평범했던 그녀의 삶은 바꾼 것은 정리의 기술입니다. 2014년도 세상에 내놓은 그녀의 정리 노하우를 담은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이 베스트 셀러가 되자, 미국까지 진출하여 넷플릭스에 의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죠.

 

그녀의 정리법이 인기를 끈 가장 큰 이유는 풍요에 지친 미국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가난만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게 아닙니다. 풍요도 우리를 지키게 합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얼마나 풍요에 지쳐 있는지. 너무 풍요로워서 우리는 지쳐 있습니다. 무기력증에 걸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죠. 그 풍요의 무기력증을 일깨워준 인물이 곤도 마리에입니다.

 

그녀가 가르쳐 주는 정리법의 핵심은 버리기 기술입니다. 집안의 모든 물건들을 한 곳에 모아 보면 지붕을 뚫고 나갈 정도의 더미가 생깁니다. 그 물건들 하나하나에 손을 대서, 그 물건이 나의 마음을 설레게하지 않는다면, 가차없이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그녀의 정리법의 핵심입니다.

 

그녀의 정리법이 얼마나 강력하게 미국인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는지, 그녀의 이름 ‘kondo’는 영어 신조어가 되어 정리하다의 뜻으로 쓰일 정도입니다. ‘Konvert’라는 신조어도 생겼는데, 이는 곤마리 정신으로 개종한 사람을 뜻합니다. 거의 종교 수준이죠.

 

실제로, 그녀의 정리법에 따라 집을 정리한 사람들은 단순히 좋았다의 감정을 넘어, ‘인생이 바뀌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정리법은 단순한 테크닉이 아니라 마음가짐이고, 인생철학이며, 영적인 행위로 승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대단하죠. 단지 집에 있는, 어지럽혀 있는 물건들을 정리만 했을 뿐인데, 삶이 변한다는 것이 말이죠.

 

그녀의 정리법의 핵심인 버리기 기술설레지 않는 과거를 떠나 보내고, ‘설레는 기억은 남기면서 새로운 삶을 맞이하는, 일종의 의식(ritual)입니다. 사실 이러한 의식(ritual)은 종교에서 행해지는 것이고, 종교의 역할이지요. 그런데, 그 종교의 역할을 한 여성이 넷플릭스라는 대중매체를 등에 업고 대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 대단하죠.

 

곤도 마리에는 종교의 핵심을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그녀가 종교인은 아닙니다만, 자신의 정리법을 통해서 종교의 핵심을 무의식적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그녀의 정리법이 말하는 것처럼, ‘남기기 위해 버리기기술(art)을 배우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어느덧 풍요에 물들어, 우리를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신앙을 사용하는 데만 그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처음에 얘기했듯이, 가난만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게 아니라, 풍요도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지친다는 뜻은 가난이나 풍요 때문에 나 자신이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가난도 존재를 존재치 못하게 하지만, 풍요도 존재를 존재치 못하게 합니다.

 

기독교 영성에 케노시스(kenosis)’라는 게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증언하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6-8).

 

케노시스란 자기를 비워내는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를 비워내고 버리는 목적은 무엇인가를 남기기 위해서 인데, 그 비워낸 자리에 오롯이 남는 것은 하나님과 나입니다. 그것이 곧 구원인 것이죠.

 

저는 곤도 마리에의 책을 보면서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녀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님에도 누구보다 기독교인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믿음은 무엇일까요? 그냥 입으로 예수를 라 시인하면 기독교인일까요? 그것에 대하여 예수님은 경계하셨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

 

우리는 무엇을 남기기 위해서 무엇을 버리고 있습니까? 버려야 하는 것과 남겨야 하는 것을 잘못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일단, 모든 것(외적인 것, 내적인 것)을 꺼내 놓고, 그 앞에 무릎 끓고 앉아 심호흡을 하고, 경건한 기도를 한 뒤, 그것에 손을 올려 놓아 보세요. 그리고, 마음을 설레게 하지 않는다면 버리고, 마음을 설레게 한다면 남기세요. 그리고, 그 설레는 것들 위에서 삶을 다시 시작해 보세요. 우리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까요? 내 삶이 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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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시론(詩論)2019. 11. 6. 03:06

[시론] – 허수경의 시라일락

 

신나게 웃는 거야, 라일락

내 생의 봄날 다정의 얼굴로

날 속인 모든 바람을 향해

신나게 웃으면서 몰락하는 거야

(허수경의 시 '라일락' 부분, 시집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에 수록)


라일락의 향기는 중독성이 짙다. 봄이 오는 길목을 가득 채우는 라일락의 향기는 웃음기 없는 사람의 마음도 활짝 열리게 한다. 내 어린 시절을 온통 물들인 것은, 봄의 라일락 향기와 가을의 국화 향기다. 봄의 향기와 가을의 향기는 그 결이 다르다. 봄의 향기는 이제 시작되는 인생의 환희가 묻어 있고, 가을의 향기는 이제 저물어 가는 인생의 애환이 묻어 있다.


교회 앞 공터에 라일락 나무가 있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그 향기를 발하던 라일락, 그래서 봄이 오는 것을 몹시도 그리워하게 만들었던 라일락, 그 나무. 나는 그 라일락 나무가 무참히 뽑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 있던 그날을 기억한다. 라일락 나무는 쓰러져 있으면서도 향기를 뿜었다. 마치신나게 웃으면서 몰락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온통날 속인 바람의 향연인지 모르겠다. 행복을 찾아 열심히 살았지만, 결국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인생의덧없음’, 정말 바람 맞은 기분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살아온 인생이 마냥 허무로만 채워진 것은 아닐 것이다. “날 속인 바람을 향해한 방 멋지게 복수하려면, 우리는 그날의 라일락 나무처럼, “신나게 웃으면서 몰락하는 것밖에 없다.


푸쉬킨은 말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아라 슬픈 날은 참고 견디라 기쁜 날이 오고야 말리니.” 그의 말은 거짓이다. 그러나 참이다. 삶은 우리를 바람처럼 속인다. 그렇다고 슬퍼만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참고 견딜 수만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신나게 웃으면서 몰락하는 것밖에 없다.


허수경은 그녀의 다른 시 연필 한 자루에서 이렇게 말한다. “짧아진다는 거, 목숨의 한 순간을 내미는 거 정치도 박애도 아니고 깨달음도 아니고 다만 당신을 향해 나를 건다는 거”. 이 시는 자연스럽게 윤동시의 시 십자가를 연상케 한다.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예수는 어떤 표정을 지으며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이했을까?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절규를 내뱉을 때, 하늘은 어두워가고, 몸은 축 늘어져갔지만, 그의 영혼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생동감이 넘쳤을 것이다. 그의 육체는 십자가 위에서 몰락하는 듯 보였으나, 그의 생명은 신나게 웃고 있었을 것이다.


몰락은 피할 수 없다. 원래 이 세상이 몰락을 부추기는 세상이므로. 그러나, 우리는 슬픔을 보이며 몰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너무도 소중하고, 너무도 신비롭고,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몰락할 것을 알지만, 몰락해가지만, 몰락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신나게 웃을 수 있다. 아무것도 나의 웃을 수 있는 자유를 빼앗을 수 없으므로. 그러므로 우리, 신나게 웃으면서 몰락하자.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