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에 해당되는 글 154건

  1. 2011.04.10 엄마의 젖가슴 1
  2. 2011.04.07 뜨레비 분수
  3. 2011.04.05 비와 벌
  4. 2010.12.09 떼르미니 역 거지 1
시(詩)2011. 4. 10. 04:09

엄마의 젖가슴

 

우리 엄마는 젖꼭지가 없지요.

어렸을 때는, 엄마의 젖꼭지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어요.

근데 말이에요,

우리 외할머니는 어땠는지 아세요?

우리 외할머니는 한 쪽 젖꼭지만 있고 한 쪽은 없었어요.

언젠가 난 엄마에게 물어보았지요.

"엄마, 엄마는 왜 젖꼭지가 없어? 외할머니도 보니까 한쪽 젖꼭지가 없더라."

낮은 목소리로 엄마는 대답하셨죠.

", 너네들 젖 먹여 키우느라 그렇지 뭐.. 엄마는 젖이 잘 안 나와서

피젖을 먹일 때가 많았어.."

엄마는 원래부터 젖꼭지가 없었지요.

젖꼭지가 없는 건,

유전이거나 신체적 결함이라고 볼 수 있지요.

하지만 난 그렇게 믿지 않아요.

엄마의 젖꼭지가 없는 건,

자식들을 키우시느라,

그보다, 나오지도 않는 젖을 짜내시느라,

엄마의 젖꼭지는 닳아서 없어진 것이라고,

그래서 엄마의 젖은 피젖이었다고,

난 믿고 있지요.

 

꼭지도 없는 우리 엄마의 젖가슴을

내가 왜 좋아하는지 아세요?

그건,

피거름으로 자라난

엄마의 사랑이 담겨있는 곳이라서 그렇지요.

그런 엄마의 피젖을 먹고 자란 내가,

어떻게 엄마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내게 있어

죽는 날까지 가장 그리운 건,

엄마의 꼭지 없는 젖가슴,

바로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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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시(詩)2011. 4. 7. 13:37

뜨레비 분수

 

고불고불 로마의 골목길을 가로질러 찾아간 뜨레비 분수.

오드리 헵번처럼 로마에서 한가로움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저녁 어스름,

조각상을 좀 더 환상적으로 만들어 줄 조명이 켜지기를,

조명이 켜지면 자신의 삶도 환상적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오감을 다 열어 놓고 기다린다.

아직 해가 다 지지 않아 어둠이 짙지도 않은데

기다리는 사람을 의식한건지 배려한건지

어둠과 환함의 어정쩡한 공기를 타고

조명이 찬란하게 켜진다.

설익은 조명인데도 사람들은 좋아한다.

그들의 한가로움은 설익은 한가로움이라서 그럴까.

그들의 삶은 설익은 삶이라서 그럴까.

설익은 것들이 어우러져 찬란함을 겨우 일궈내고 있을 때

사람들은 일제히 분수를 등지고

분수 속으로 동전을 던져넣기 시작한다.

던지기 전 그들은 잠시 눈을 감고 소원을 빈다.

그 소원은 분명 오감이 행복해할 수식어들이 가득찬

환상적인 소원일 것이다.

 

그 때,

배를 낮게 깔고 힘겨운 움직임으로

뜨레비 분수 앞을 지나는 거지가 눈에 들어온다.

환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시간과 절망을 딛고 사는 거지의 시간이 교차되는 순간,

소원을 빌기 위해 분수 속으로 던져지는 동전은 있어도

마땅히 빌 소원도 없는 거지의 깡통 속으로 던져지는 동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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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시(詩)2011. 4. 5. 12:21

비와 벌

 

처마 밑을 맴돌던 벌 한 마리가

주저 앉다 말고 갑자기

빗속으로 뛰어 들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곤충심리학자가 아니라서 잘 모른다

 

다만 빗속에서 비 맞고 돌아다녔다고

나처럼 그 벌도 엄마한테 혼날까봐

그것이 걱정된다

 

빗속으로 뛰어드는 벌을 보니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난다

나도 앞뒤 가리지 않고 빗속으로 뛰어들고 싶다

 

비를 흠-뻑 맞고 집에 돌아와

엄마한테 혼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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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시(詩)2010. 12. 9. 23:52

나는 여기서 2천 년을 살았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세워지지 않았다, 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지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는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도 없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는 말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도 없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망하지 않았다, 는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도 없다.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본다.

그들이 신기해 하는 것은

내가 단순히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 때문이 아니라,

쓰레기통을 뒤져 찾아낸

썩은 음식을 먹기 때문이라는 것도 나는 안다.

썩은 음식을 먹는 나를 보면서

썩은 음식을 먹어도 괜찮나, 생각 할 것이다.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왜 썩은 음식을 먹는지.

기껏 생각해봤자, 돈이 없어서, 그야말로 거지여서

쓰레기통을 뒤져 썩은 음식을 먹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2천 년을 로마에서 살아온 나는

돈이 없어서, 그야말로 거지여서 쓰레기통을 뒤져

썩은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다.

2천 년을 로마에서 살아온 나에게

가장 정다운 냄새는 바로 썩은내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도

쓰레기통을 뒤져 찾아낸 썩은 음식을 먹는 나를 보면서

신기한 듯 그냥 지나쳐버리고 있지 않는가?

당신 손에 들려 있는 빵조각을 더 힘차게 움켜쥐면서.


* 떼르미니 역은 이탈리아 로마의 중앙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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