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7'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2.11.17 바울의 해체, 우리의 해체
  2. 2022.11.17 불황과 호황: 카지노와 교회

[바울의 해체, 우리의 해체]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해체(deconstruction)한다. 그에게 복음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해체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넘나드는 보편적인 구원을 이루는 것이었다. 바울의 신학이 담고 있는 정치신학은 인간(유대인)과 인간(이방인) 사이에 놓인 막힌 담을 허무는 것이었다.

 

바울 신학의 정신을 이어받은 그리스도인이 오늘날 생태 위기를 맞아 더 진행시켜야 할 해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해체시키는 일이다. 우리 시대에 요청되는 정치신학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놓인 막힌 담을 허무는 것을 넘어서(이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작업이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놓인 막힌 담을 허무는 정치신학이다.

 

바울의 정치신학이 유대인 중심의 세계관을 이방인도 포함시킨 보편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이었듯이, 우리 시대에 요청되는 정치신학은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비인간도 포함시킨 보편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이다. 유대인이 이방인에 대하여 자신들과 동일한 가치를 인정할 때 그것이 곧 구원이었듯이, 인간이 비인간에 대하여 자신들과 동일한 가치를 인정할 때, 구원이 임할 것이다.

 

비구원은 가치의 불균형에서 온다. 구원은 가치의 균형이다. 마르틴 부버가 일찍이 간파했듯이, 비구원은 '나와 그것'의 가치이다. 나 중심에서 사로잡혀 상대방의 가치를 '그것(it)'으로 상대화시키면 거기에는 구원이 없다. 차별과 혐오와 폭력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악들은 합리적이고 타당한 행위로 둔갑한다. 구원은 상대화된 '그것'의 가치는 '너(당신)'의 가치로 대등화되는 것이다. 구원은 '나와 너(당신)'의 가치이다.

 

모든 것이 그렇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상대방의 가치를 '그것'으로 전락시키는가. 자신이 무슨 성취를 이룬 것처럼 스스로를 높이는 사람에게 특히 이러한 가치 전락이 발생한다. 동양철학적으로 말해서, 자신의 '이(理)'가 상대방의 '이(理)'보다 높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을 '그것'으로 취급하며 하대하게 된다. 특별히 한국 사람들에게 이를 높이는 수단으로 전통적으로 나이, 성별, 가문, 학식 등이 쓰였고, 요즘들어서는 재산, 학벌, 외모가 자신의  '이(理)'를 높이는 수단으로 긴요하게 쓰이고 있다.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바울이 하려했던 유대인과 이방인의 해체도 그 완성이 묘연할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에 절실하게 요청되는 인간과 비인간의 해체는 이제 걸음마 단계인 듯하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수도없이 존재를 '나와 그것'으로 설정지어 차별하고 혐오하고 폭력을 저지르며 산다. 우리는 언제쯤 '나와 너(당신)'의 관계 속에서 평화를 이루고, 서로 존중하며, 서로 사랑하면서 살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아주 묘연할 뿐이다. 이렇게 구원이 묘연한데,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자기의 구원을 자랑하는 자들이 말하는 구원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내가 삶 속에서 성취하려는 구원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상대방(당신)을 '그것'으로 상대화시키지 않고 '너(당신)'로 대등화시키는 것이다. 나보다 '이(理)'가 낮다고 생각되는 존재도, 나보다 '이(理)'가 높다고 생각되는 존재도, 그저 나에게는 '너(당신)'일 뿐이다. 나는 누군가를 하대하거나 누군가에게 굽실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에게 굽실대는 존재를 거부한다. 나는 나를 하대하는 존재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와 너(당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구원받은 존재이지, 상대방은 '그것'의 가치로 상대화시키는 비구원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존재가 되기를! 비구원의 존재가 아니라 구원의 존재가 되기를! 무엇보다, 요즘 더 긴급하게 요청되고 있듯이, 비인간을 '너'로 받아들이기를!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여 생명이 지속적으로 번성하기를!

Posted by 장준식

[불황과 호황: 카지노와 교회]

 

미국의 카지노 산업은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Despite high gas and food prices, there doesn't seem to be many inflation worries when it comes to gambling." 인플레이션이 심해서 개스값과 식료품 가격이 엄청 올라서 먹고 살기 힘들어졌는데, 도박장은 역대 최고의 호황을 맞았다는 기사다. 올해 3분기 실적이 무려 150억 달러란다. 이에 대하여 네바다 대학교의 도박 역사를 전공한 교수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한바탕 기회를 잡으려는 인간의 심리가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풍경이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호황을 누리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도박 산업이 되었다. 사람들의 인식이 완전히 바뀐 것 같다. 불확실한 시대에 신의 인도를 받는 것보다는 돈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더 확실한 미래를 보장 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가진 보편적인 생각인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각자 도생의 시대가 되지 않았는가. 공동체는 없고 '개인'만 남은 세상에서 누가 우리를 구원하겠는가.

 

그동안 너무 '개인구원'만 힘써 외쳤던 복음주의 신앙이 이러한 현상을 한몫 거들은 것도 사실이다. '개인구원'이 각자도생과 무엇이 다른가.  종교가 각자도생을 endorsement(지지) 했으니,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이웃들을 돌보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자기의 소유를 더 늘리려는 욕구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인 듯하다.

 

미국 투자 자본의 40%가 몰려 있다는 실리콘밸리, 내가 사는 동네도 불황을 맞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의 layoff 사태가 줄을 잇고 있다. 우리 동네는 올 가을, 나무만 잎을 떨구어내는 게 아니라, 기업들도 나무가 이파리를 떨구어내듯 노동자들을 떨구어내고 있다. 그래서 올 가을, 바닥에 나뒹구는 낙엽이 별로 낭만적이지 않다.

 

어려운 시절, 모두가 조금씩만 양보하고 나누어서, 잘 버텨내면 좋겠다. 모두 살아남아 꽃을 피우고 다시 이파리가 무성해지길!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