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자
바울 일행은 빌립보를 떠나 데살로니가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 바울 일행은 적어도 네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바울과 실라, 그리고 디모데와 누가이다. 사도행전 17장은 데살로니가에 복음이 전해지고, 그곳에 교회가 탄생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복음이 전해지면 교회가 탄생한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행하신 위대한 일이 복음이다.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지역에 대략 3주 동안 머물렀다. 3주 밖에 머물지 못했는데 그곳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기적이다. 이는 성령의 역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바울은 사역은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한 지역에 가면 회당을 찾아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먼저 전하고, 그들이 복음을 거부하면 그 지역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복음을 전할 때 나타나는 갈등 상황 또한 일정한 패턴을 가진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방인들과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기 질투하여 바울 일행을 죽이려 드는 유대인들이 대조되어 나타난다. 복음을 들은 유대인들은 왜 시기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 또는 구원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생각했다. 그런데 복음은 자신들의 전유물을 이방인들에게 넘겨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상황에 적용해 보면, 열심히 일해서 모은 전재산을 빼앗기는 정도의 충격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바울 일행은 유대인들의 시기로 인하여 데살로니가 지역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겨우 3주만 머물렀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탄생에는 야손(Jason)이라는 인물을 빼놓을 수 없다. ‘빌립보 교회’ 하면 루디아(Lydia)가 떠올라야 하는 것처럼, ‘데살로니가 교회’ 하면 야손(Jason)이 떠올라야 한다. 야손은 바울 일행을 환대(hospitality)했다. 야손은 자기 집을 모임 장소로 내어놓았다. 이 때문에 야손은 곤란을 겪는다. 바울을 끌어내 관리들에게 데리고 가려했던 그 지역의 유대인들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그들은 바울 대신 야손을 끌고 관리들에게 가서 그를 고발한다. 그 일 때문에 야손은 보석금을 물어야 했고, 다시는 바울을 집에 들이지 않겠다는, 강압적인 약속을 해야했다. 이런 어려움 당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야손은 바울 일행을 환대했다. 환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 실천이다. 환대를 하면 그 환대를 통해 성령이 역사하신다. 창세기의 아브라함도 환대를 실천했을 때 이삭을 얻는 역사를 경험한다. 환대는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통로이다.
데살로니가 지역을 급히 떠나 바울이 당도한 곳은 베뢰아 지역이었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할 때, 바울 일행은 매우 특별한 용어를 사용한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런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행 17:11). 한국어로 ‘더 너그러워서’라고 옮긴 말은 헬라어 ‘유게네스테로스’이다. 이는 ‘유게네스’에 비교급 ‘테로스’를 붙여 만든 용어이다. ‘유게네스’는 고귀한 자, 귀족, 고상한 출신이라는 뜻이다. 영어의 ‘Eugene’이 여기에서 왔다. 한국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남자 주인공 이름이 ‘Eugene Choi’(최유진)였다. 선교사가 붙여준 이름이다. ‘위대하고 고귀한 자여!’ 드라마에서 ‘유진’(Eugene)은 이름대로 참으로 고귀한 삶을 산다.
바울 일행은 복음을 받아들인 베뢰아 지역의 사람들을 ‘유게네스테로스’라고 불렀다. ‘더 고귀한 사람들.’ 이 말은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에 비교한 것이다. 그러니까,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우들은 ‘고귀한 사람들’이고, 베뢰아 교회의 교우들은 ‘더 고귀한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참 따뜻한 말이다. 고귀한 자. 귀족 같은 사람. 고상한 출신. 이것은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차별적인 용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사람 됨됨이를 말하는 것이다.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교회와 그 근방에 있던 베뢰아 교회의 교우들을 ‘고귀한 자’라고 불렀다.
이 호칭은 굉장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찬사를 받는 것일까? 약간의 실마리를 사도행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 복음이 정말로 그런가를 탐구하기 위하여 성경을 공부하고 묵상했다. 한 마디로, 이들은 복음을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이런 진지함을 갖는 일은 쉽지 않다. 특별히 모든 것이 가벼워진 시대에, 복음을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일을 쉽지 않다. 우리 시대는 데살로니가 교회와 베뢰아 교회의 교우 같은 사람들이 참으로 귀한 시대이다.
이들의 고귀함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려면 데살로니가전/후서를 살펴보면 된다. 특별히,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의 말씀 중 다음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Be joyful always, pray continually,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 이것이 고귀한 자의 삶이 아니겠는가. 마음에 기쁨이 있는 자. 끊임없이 기도하는 자.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줄 아는 자.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만큼 고귀한 인생이 없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쁨, 기도, 감사의 삶을 사자 고귀한 자이다. 고귀한 자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이다. 고귀한 자.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바이블 오디세이 II'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린도 교회의 탄생 (0) | 2024.09.03 |
---|---|
아덴에서의 사역 (0) | 2024.08.29 |
빌립보 교회의 탄생 (0) | 2024.08.15 |
성령이 하시는 일 (0) | 2024.08.04 |
예루살렘 공의회: 환대를 열다 (0) | 2024.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