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와 신앙2011. 9. 8. 00:09

조명시리(朝名市利): 명성은 조정에서, 이익은 시장에서 다투라는 뜻 / 무슨 일이든 격에 맞는 곳에서 하라는 말


전국시대인 기원전 317년에 진(
)나라 혜문왕(惠文王)에게 사마착(司馬錯)은 촉지방의 오랑캐를 정벌하면 영토도 넓어지고 백성들의 재산도 늘어 일거양득이라고 건의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상 장의(張儀)는 의견이 달라 한나라를 치고 중원으로 진출하여 패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는 명예는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은 시장에서 다투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나라는 시장이고 주나라 왕실은 조정으로 본 것입니다. 이것을 다투지 않고 오랑캐 정벌을 나선다면 패자가 되는 길에서 멀어진다고 주장한 것이죠. 그러나 혜문왕은 사마착의 말을 따라 촉을 정벌하는 영토의 확장에 주력하고 맙니다. -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 –

 

닭을 잡는 데 장수의 칼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닭 잡는 데는 조그만 식칼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확대시키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원래 자기 모습 보다 더 크게 보이려는 욕구이지요. 그러다 보니 허풍이 늘고 목소리도 커지고 겉치레도 심해집니다. 참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묵상할 기회는 늘 놓쳐버리고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을 보이면서 살아갑니다. 놀아야 할 때는 놀아야 하고, 쉬어야 할 때는 쉬어야 합니다. 공부해야 할 때는 공부 해야 하고, 운동해야 할 때는 운동해야 합니다. 부드럽게 말해야 할 때는 부드럽게 말해야 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는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시기에 알맞은 행동과 말을 할 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어린 아이는 어린 아이의 격이 있고, 어른은 어른의 격이 있습니다. 부모는 부모의 격이 있고 자식은 자식의 격이 있습니다. 남편은 남편의 격이 있고 부인은 부인의 격이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성도의 격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 격에 맞게 해야겠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말을 하든지, 성도의 격에 맞게 합시다.

'고사성어와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포지구(楊布之狗)  (0) 2011.09.23
금슬상화(琴瑟相和)  (0) 2011.09.15
공화(共和)  (0) 2011.09.03
설상가상(雪上加霜)  (0) 2011.08.30
기호지세(騎虎之勢)  (0) 2011.08.22
Posted by 장준식
고사성어와 신앙2011. 9. 3. 04:38

공화(共和): 함께 어울려 화목하다 / 두 명 이상이 화목하여 다스린다


무왕이 세운 주(
)나라는 오만하고 잔인하며 사치를 일삼는 여왕 때 매우 어지러웠습니다. 그가 즉위한 지 3년 만에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왕은 달아났습니다. 나라에 왕이 없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러자 소공(召公)이 태자 정()을 자기 집에 숨겨둔 채 주공(周公)과 합의하여 14년 동안 나라를 잘 다스렸습니다. 이 기간을 '공화 시대'라고 합니다. 여왕이 죽자 태자가 즉위하여 선왕(宣王) 이 되었습니다. - 사기 주본기 (史記 周本紀) –

 

인화단결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못 먹고 못 살던 시절, 사람들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잘 살아보자고 의기투합했던 때에 관공서마다 걸려 있던 문구 중 하나입니다. “인화단결을 그토록 외쳤던 이유는 그만큼 사람들끼리 화합하여 같은 마음으로 같은 뜻을 품고 협력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가장 깊은 곳까지도 타락해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화합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자기 배를 불릴 것인가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이건 복음이 들어가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믿는 이들은 복음을 받고 내면의 싸움을 합니다. 죽을 때까지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서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7:18-19). 사도 바울이 세웠던 교회에서도 공화하지 못해서 문제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교회에서 같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오셔야 해결되는 문제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함께 어울려 화목하게지내려고 노력할 뿐이지 그것을 완전하게 이룰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공화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인간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거라고 생각하며 포기하고 사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거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된 창조의 완성을 바라보면서 사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면서 당신이 아버지와 하나인 것처럼 제자들에게도 하나가 될 것을 주문하시고 기도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본인이 세운 교회 성도들에게 끊임없이 같은 마음, 같은 뜻, 같은 생각을 품고 하나가 되라고 주문했습니다. 교회의 목표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어 공화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건 주님의 명령입니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닮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서툴고, 때로는 뜻대로 잘 되지 않아 속상하지만, 그것이 주님 걸어가신 길이니 우리도 인내를 갖고 따라갑시다. 함께 어울려 화목하게 지낼 때 하나님의 은총이 임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공화를 이룹시다.


'고사성어와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슬상화(琴瑟相和)  (0) 2011.09.15
조명시리(朝名市利)  (0) 2011.09.08
설상가상(雪上加霜)  (0) 2011.08.30
기호지세(騎虎之勢)  (0) 2011.08.22
노익장(老益壯)  (0) 2011.08.17
Posted by 장준식
고사성어와 신앙2011. 8. 30. 06:15

설상가상(雪上加霜): 눈 위에 서리가 덮인 격이라는 뜻 / 어려운 일이 연거푸 일어남


계속해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때 많이 쓰는 표현으로, 흔히 '엎친 데 덮친 격', '엎친 데 덮친다'등으로 풀어 씁니다. 속담 가운데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와도 의미가 통합니다. 같은 뜻의 한자 성어로는 '병을 앓는 동안에 또 다른 병이 겹쳐 생긴다'는 뜻의 병상첨병(
病上添病)이 있습니다.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는 말로, 좋은 것 위에 더욱 좋은 것을 더함을 비유한 한자 성어 '금상첨화(錦上添花)'와는 정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오해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셨나 하고 말이죠. 그건 불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고 안 계시고는 어떠한 일에 의해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 판가름 나는 겁니다. 좋은 일만 가득하면, 즉 금상첨화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거고, 설상가상이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 건가요? 이건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불신앙입니다. 현재 인생이 설상가상이라고 생각되십니까? 기도의 끈을 더 굳게 붙잡으십시오. 현재의 인생이 금상첨화이십니까? 고개를 더 숙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십시오. 십자가에서 부활을 본 우리 그리스도인은 설상가상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모든 일이 다 주의 손에 있으니 주의 뜻대로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뜻은 언제나 생명이 넘치는 일이니, 결국 모든 것이 다 잘 될 겁니다. Alles Gute! (독일어인데 영어로는 ‘Everything will be fine!’이고 한국말로는 모든 일이 다 잘 될 겁니다.’라는 뜻입니다.)


'고사성어와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명시리(朝名市利)  (0) 2011.09.08
공화(共和)  (0) 2011.09.03
기호지세(騎虎之勢)  (0) 2011.08.22
노익장(老益壯)  (0) 2011.08.17
화서지몽(華胥之夢)  (0) 2011.08.06
Posted by 장준식
고사성어와 신앙2011. 8. 22. 03:57

기호지세(騎虎之勢): 호랑이를 올라타고 달리는 기세 / 중도에서 그만둘 수 없는 형세


남북조 시대 말엽에 북조 최후의 왕조인 북주(
北周)의 선제(宣帝)가 죽자, 재상 양견(楊堅)은 즉시 입궐하여 국사를 총괄했습니다. 외척이지만 한족(漢族)이었던 그는 일찍이 선비족(鮮卑族)이 세운 왕조를 타도하고자 기회를 노리던 바, 이번에 모반을 꾀하고 있을 때 이미 양견의 뜻을 알고 있는 아내 독고(獨孤) 부인이 글을 보내왔습니다. '당신은 이미 호랑이를 올라타고 달리는 기세이므로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일입니다[騎虎之勢 不得下]. 만약 도중에서 내리면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호랑이와 끝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디 목적을 달성하시오소서.' 이에 용기를 얻은 양견은 나이 어린 정제(靜帝)를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문제(文帝)라 일컫고 국호를 수()라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8년 후인 589, 문제는 남조(南朝) 최후의 왕조인 진(:557∼589)나라마저 멸하고 마침내 천하를 통일했습니다.
- 수서(隨書) 독고황후전(獨孤皇后傳) -

 

예전에 호랑이 등에 올라타지 말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구원파, 신천지 등 이단에 대한 주의보를 내린 설교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진리를 가장한 것들이 참 많습니다. 진리일수록 유사진리의 파리가 많이 꼬이는 법입니다. 그만큼 진리를 구분해내는 것이 힘들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진리가 아닌 것에 빠져 패가망신 당할 수 있습니다. 호랑이 등에 한 번 올라타면 내려오기 쉽지 않습니다.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면 오히려 호랑이에게 잡혀 먹을 수 있습니다. 진리가 아닌, 가짜 진리는 날마다 우리를 유혹합니다. 가짜 진리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합니다. 누가 먹어도 맛없고, 누가 봐도 추한 것에 손 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일단 거기에 물들고 나면 눈과 귀가 가려져 더 이상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이걸 중독이라고 합니다. 이단 사이비에 중독된 사람들은 더 이상 본인들 힘으로 거기에서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호랑이 등에 탄 사람처럼 무섭게 돌진합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합니다. 그래서 이단 사이비에 빠진 사람들이 더 신앙이 좋아 보이고 더 열정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이단, 사이비에 빠지지 마십시오. 끝장 날 때까지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잘 받아 초대교회를 잘 세워나갔던 성도들처럼, 목사의 가르침을 잘 받아 교회와 삶을 잘 세워나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됩시다.

'고사성어와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화(共和)  (0) 2011.09.03
설상가상(雪上加霜)  (0) 2011.08.30
노익장(老益壯)  (0) 2011.08.17
화서지몽(華胥之夢)  (0) 2011.08.06
간장막야(干將莫耶)  (0) 2011.08.02
Posted by 장준식
고사성어와 신앙2011. 8. 17. 03:50

노익장(老益壯): 늙을수록 더욱 건장하다 / 늙을수록 더욱 굳은 의지를 갖는다

한나라 말기 부풍군(
扶風郡) 출신으로 힘이 천하장사에 명장인 마원(馬援)은 대기만성 형의 인물인데 고향에서 죄수들을 다른 곳으로 이송하는 책임을 맡은 관리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죄수들을 이송하다가 그들이 너무 괴로워서 애절하게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는 동정심을 못 이겨 모두 풀어준 뒤 북쪽으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 후 그는 후한 광무제(光武帝) 때 대장군이 되어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는 평소에 이렇게 말하고는 했답니다. "사나이란 어려운 형편에 처할수록 더욱 굳세게 버티어야 하고 늙을수록 더욱 건장해야만 한다." -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 –

 

노익장”, 사도 바울의 이 말이 떠오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워로지도다”(고후 4:16). 여기에서 겉사람은 육체를 가리키고, 속사람은 영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나면 우리는 육체와 영이 분리된 존재고, 육은 구원 받지 못하고 영만 구원 받는다는 헬라철학의 이원론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우리의 구원은 육과 영의 종합적인, 또는 전체적인 구원입니다. 영만 구원 받고 육은 썩어지고 없어지고 만다는 생각은 기독교의 생각이 아니라 헬라철학에 기초를 둔 이단 사설입니다. 이런 잘못된 생각 때문에 생겨난 이단 기독교 종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은 구원 받았으니 어차피 구원 받지 못할 육은 아무렇게나 굴려도 된다는 생각에 매우 부도덕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건 명백한 이단 사설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겉사람과 속사람은 좀 더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건 영과 육의 이원론적 구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성숙, 즉 성화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의 육신은 하나님이 정하신 자연법칙에 의해 늙습니다. 이건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겁니다. 육체가 늙어가면 모든 감각, 우리의 욕심을 자극하던 그 모든 감각이 무디어져 이 세상에 점점 미련을 버리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의 내면은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께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이게 올바른 신앙인의 삶입니다. 거꾸로 이 세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늙어갈수록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찾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허무하고 불쌍한 인생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 노익장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바로 그 하나님 나라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늙어갈수록, 이제 곧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생각에 오히려 삶이 더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리스도인 노익장으로 늙어갑시다.


'고사성어와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상가상(雪上加霜)  (0) 2011.08.30
기호지세(騎虎之勢)  (0) 2011.08.22
화서지몽(華胥之夢)  (0) 2011.08.06
간장막야(干將莫耶)  (0) 2011.08.02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  (0) 2011.07.27
Posted by 장준식
고사성어와 신앙2011. 8. 6. 05:28

화서지몽(華胥之夢): 화서의 꿈 / 좋은 꿈(을 꾸다)


고대 중국의 황제(
黃帝)는 올바른 정치를 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몸과 마음이 피곤해지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석 달 동안 정치에서 손을 뗀 채 쉬던 어느 날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는 화서씨의 나라(華胥之國)에 놀러 갔습니다. 그곳은 왕도 없고 명령을 내리는 사람도 없는 가장이상적인 나라였습니다. 사람들은 욕심도 없고 사랑도 미움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초월한 자연 그대로였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황제는 "나는 꿈속에서 도를 깨달았다."고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그 후 그는 자신이 깨달은 도에 따라서 나라를 다스렸다고 합니다. 당연히 천하가 태평해졌습니다. - 열자(列子) 황제편(黃帝篇) -

 

우리의 삶은 늘 구부러지기만 합니다. 우리의 삶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아서 가만히 있으면 강 아래로 떠내려갑니다. 굽은 것을 펴보려고, 흐르는 인생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이 쉽게 피곤해집니다. 일이 안 풀릴 때는 좀 쉬어야 합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전도서 10:10).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잘 가꾸어 나가는데 필요한 연장들이 무디어졌는데도 그것을 잘 감지하지 못합니다. 그냥 무조건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열심이 있어야죠. 성실하게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건 기본입니다. 그러나 그 성실과 그 열심이 빛을 발하게 하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무디어진 인생의 철 연장을 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위에 등장하는 황제도 열심히 정사를 돌봤지만 몸과 마음만 피곤해졌을 뿐입니다. 그가 해답을 찾은 때는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던 때가 아니라 몸과 마음에 쉼을 주고 있을 때입니다. 즉 무디어진 연장을 갈고 있을 때입니다. 이 지혜를 꼭 몸에 익혀야 합니다. 먹고 살기 바쁜 시절에 배부른 소리 같지만, 쉬는 시간을 꼭 확보하십시오. 허영심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쉬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고사성어와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호지세(騎虎之勢)  (0) 2011.08.22
노익장(老益壯)  (0) 2011.08.17
간장막야(干將莫耶)  (0) 2011.08.02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  (0) 2011.07.27
단기지교(斷機之敎)  (0) 2011.07.22
Posted by 장준식
고사성어와 신앙2011. 8. 2. 23:09

간장막야(干將莫耶): 중국 춘추시대 간장이 만든 두 자루의 명검


(
)나라 왕 합려(闔閭)가 대장장이 간장에게 명검을 두 자루 만들어서 바치라고 명령했습니다. 간장이 칼을 만들기 위해 청동을 녹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청동은 삼년이 지나도 녹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그의 아내인 막야가 남편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용광로에 넣은 뒤 300명의 소녀가 풀무로 바람을 넣으니까 그제야 청동이 녹았습니다. 드디어 간장이 명검 두 자루를 만들어, 양의 기운이 있는 검을 간장, 음의 기운이 있는 검을 막야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순자는 천하의 명검들을 열거했습니다. 제환공의 총(), 주문왕의 녹(錄), 초장왕의 홀(), 오왕 합려의 간장과 막야, 그리고 거궐과 벽려 등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무리 명검이라 해도 숫돌에 갈지 않으면 무딘 칼일 뿐, 아무것도 베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 오월춘추 합려내전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주인은 여행을 떠나면서 세 명의 종들에게 각각 다섯, , 그리고 한 달란트씩을 맡깁니다. 그런데 주인이 돌아왔을 때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들은 그것을 불려서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그것을 땅 속에 묻어 두었다가 그것을 그대로 주인에게 바쳤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화를 내면서 그 종을 일컬어 무익한 종이라고 하면서 그 달란트를 빼앗아버렸습니다. 이 달란트 비유는 천국에 대한 비유인데,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다각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으나 위에서 순자가 한 말과 엮어 생각해 보면 하늘 나라를 소유한 자는 무엇을 하든 복된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천국은 마음 속에 감추어 둘 수 없습니다. 명검을 가졌다고 그것을 장롱 속에 꼭꼭 감추어만 두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명검을 제대로 관리해 주지 않으면 위급한 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천국을 소유한 자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널리 펼쳐지도록 끊임 없이 천국을 이세상에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천국을 소유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밝히 드러나도록 갈고 닦아야 할 것입니다.


'고사성어와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익장(老益壯)  (0) 2011.08.17
화서지몽(華胥之夢)  (0) 2011.08.06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  (0) 2011.07.27
단기지교(斷機之敎)  (0) 2011.07.22
무안(無顔)  (0) 2011.07.14
Posted by 장준식
고사성어와 신앙2011. 7. 27. 23:10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음


(
)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나라였습니다. 당서(唐書) <구양순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서예의 달인으로는 당초사대가(唐初四大家)로 꼽혔던 우세남(虞世南), 저수량(楮遂良), 유공권(柳公權), 구양순(歐陽詢)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의 서체를 배워 각자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했습니다. 구양순의 엄정함, 우세남의 온화함, 저수량의 곱고 아름다움. 모두 서도(書道)의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 독특하고 힘찬 솔경체(率更體)를 이룬 구양순이 유명한데, 그는 글씨를 쓸 때 붓이나 종이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수량은 붓이나 먹이 좋지 않으면 글씨를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하루는 우세남에게 구양순 선생과 자신을 비교해달라고 하였더니, '구양순은 어떤 종이에 어떤 붓을 사용하여도 자기 마음대로 글씨를 쓴다고 한다. 자네는 아무래도 안될거야[吾聞詢不擇紙筆 皆得如志 君豈得此(오문순불택지필 개득여지 군기득차).'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어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겠으나, 초점을 우리 하나님께 맞추어 보려고 합니다.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듯이, 하나님은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붓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로봇처럼 마음대로 부린다는 의미에서 붓이 아니라, 우리는 그의 지으신 백성이라는 의미에서 붓입니다. 하나님은 붓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뜻을 위해서 사용하십니다. 글 잘 쓰는 사람이 좋은 글을 쓸 때 좋은 붓이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의 위대한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좋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금그릇이나 은그릇만이 하나님께 요긴하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질그릇 같은 우리들도 하나님께 귀하게 쓰이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기 위해서는 훌륭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건 인간들의 조바심과 자기만족에 불과합니다. 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내가 쓰이고 싶다고 쓰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쓰시기 편한 붓으로 나오는 게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헌신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붓을 가리지 않으십니다. 얼마나 은혜입니까?


'고사성어와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서지몽(華胥之夢)  (0) 2011.08.06
간장막야(干將莫耶)  (0) 2011.08.02
단기지교(斷機之敎)  (0) 2011.07.22
무안(無顔)  (0) 2011.07.14
무용지용(無用之用)  (0) 2011.07.05
Posted by 장준식
고사성어와 신앙2011. 7. 22. 00:24

단기지교(斷機之敎): 짜던 배를 끊어버려서 가르치다 / 학업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훈계


한나라 유향
(
劉向)의 열녀전(列女傳) 맹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맹자가 집을 떠나서 공부를 하다가 공부를 마치지 않은 채 홀어머니를 뵙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베를 짜던 어머니는 가위로 베를 끊어버리고 이렇게 타일렀습니다. "네가 공부를 도중에 그만두고 집에 돌아온 것은 이처럼 짜던 베를 끊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이란 학문을 익히지 못하면 도둑이나 남의 하인이 될 뿐이다." 크게 깨달은 맹자가 다시 집을 떠난 뒤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 밑에서 학문의 길에 정진했다고 합니다.

 

종교개혁 이전에 성경은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한 일 중에 하나가 바로 성경을 대중화시킨 겁니다. 성직자뿐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지요. 그래서 개신교는 다른 기독교 교파보다 성경 공부에 더 많은 공을 들입니다. 성경공부 없는 교회가 없습니다. 성경공부 프로그램에 참여 안 해본 교인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성경공부가 그냥 유행처럼 돼버렸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공부하는 이유는 성경 지식을 쌓기 위함이 아닙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이유는 성경 말씀대로 살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성경공부는 난무하는데 성경 말씀대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성경은 눈으로 읽은 것이 아니라 손으로 읽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성경을 익히지 못하면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기복신앙인 되거나 사탄의 하인이 될 뿐입니다. 성경공부를 쉬지 마십시오. 성경 지식을 쌓기 위해 성경공부를 하지 말고 거기에 펼쳐진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통치하실 겁니다.


'고사성어와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장막야(干將莫耶)  (0) 2011.08.02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  (0) 2011.07.27
무안(無顔)  (0) 2011.07.14
무용지용(無用之用)  (0) 2011.07.05
수성지난(守成之難)  (0) 2011.07.04
Posted by 장준식
고사성어와 신앙2011. 7. 14. 00:51

무안(無顔): 부끄러워서 볼 낯이 없다는 것을 이르는 말

'무안색(無顔色)' 또는 '무색(無色)'이라고도 합니다. '얼굴이 없다'라는 뜻으로,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하거나 상대편을 대할 면목이 없는 경우를 말합니다. 당나라의 시인 백낙천이 지은 '장한가(長恨歌)'에는 당나라의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임금님을 모시게 된 그녀 / 눈을 돌려 한번 웃으면 / 백 가지 아름다움 피어오르니 / 아무리 곱게 화장한 궁녀들도 / 그 앞에서는 얼굴빛이 없다." 이 시의 한 구절에서 유래한 이 성어(成語)는 궁녀들의 고운 얼굴이 무색하게 된다는 뜻으로, 아름다운 양귀비 앞에서는 궁녀들도 얼굴을 들지 못하였다는 말입니다. 양비귀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양귀비의 아름다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십자가에서 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아름다움은 양귀비의 그것과는 매우 다릅니다. 십자가의 아름다움은 역설적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 십자가는 전혀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것을 가리켜 미련한 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고전 1:18). 우리 그리스도인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좆는 자들이 아니고, 십자가에 나타난 역설의 아름다움을 좆는 자들입니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좇아 다니게 되어 있습니다. 진리는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진리인 줄 알고 사람들을 좇아 다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잘 분간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감각은 타락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구원 받았다는 것은 올바른 감각, 즉 올바른 분별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뜻으로도 통합니다. 올바른 감각, 올바른 분별력을 지닌 자들은 십자가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진리임을 선포할 것입니다. 우리의 눈은 무엇을 더 아름답게 보고 있습니까? 양귀비입니까? 십자가입니까? 십자가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안해집니다.

'고사성어와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  (0) 2011.07.27
단기지교(斷機之敎)  (0) 2011.07.22
무용지용(無用之用)  (0) 2011.07.05
수성지난(守成之難)  (0) 2011.07.04
연목구어(緣木求魚)  (0) 2011.06.29
Posted by 장준식
고사성어와 신앙2011. 7. 5. 23:17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 없는 것의 쓸모


아래의 세 가지 일화는 장자의 인간세편(
人間世篇)에 나오는 것들입니다.

공자가 초나라에 갔을 때 숨어사는 현자 광접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계피는 먹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나무를 벤다. 사람들은 쓸모 없는 것의 이용가치는 모른다."

혜자가 장자의 말이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하자 장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땅이 아무리 넓어도 사람이 서 있기 위해서는 발이 닿는 곳만 있으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발 닿는 곳만 남기고 나머지를 파버린다면 어찌 걸을 수가 있겠는가! 이와 같이 쓸모 없는 것도 다 쓸모가 있다."

잎만 무성한 나무를 나무꾼이 쓸모가 없다고 해서 자르지 않는 것을 보고 장자가 제자에게 말했습니다. "저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자기 수명을 다한다."

 

이 세 가지 중 마지막 것이 참 좋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사도 야고보가 제일 먼저 순교를 당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가 제일 먼저 순교를 당한 이유는 비기독교인들이 보기에 가장 위협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쓸모 있는 재주꾼에 의해서 기독교가 발전되어 온 것도 사실이지만, 아무 위협도 되지 않는 풀뿌리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기독교가 지금까지 연명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은 자가 강한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이 너무 미약하다고 자책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존재가 너무 쓸모 없다고 비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미약하고 쓸모 없는 존재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쓸모 없는 것을 들어서 쓸모 있게 쓰시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하나님의 선교에서 제외되는 피조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얼마나 은혜입니까?


'고사성어와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기지교(斷機之敎)  (0) 2011.07.22
무안(無顔)  (0) 2011.07.14
수성지난(守成之難)  (0) 2011.07.04
연목구어(緣木求魚)  (0) 2011.06.29
문일지십(聞一知十)  (0) 2011.06.22
Posted by 장준식
고사성어와 신앙2011. 7. 4. 12:40

수성지난(守成之難): 나라를 유지하는 어려움


당나라를 세울 때 주역인 이세민은 당나라를 세우고 나서 나라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 그가 하루는 신하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나라를 새로 세우는 것과 나라를 유지하는 것(
守城) 중 어느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가?” 신하들마다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그는 나라를 새로 세우는 것도 어렵고 나라를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나라를 새로 세웠으니, 이제부터는 나라를 유지하는 일에 전념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23년간 태평성대를 이루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두고 우리 신앙인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을 갖는 것과, 신앙을 지키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운가?” 이에 대한 대답도 분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앙은 우리의 일이 아니라, 성령의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신앙을 가질 수 없을뿐더러, 신앙을 지키기도 힘듭니다. 신앙의 신비가 여기에 있습니다. 신앙은 매우 능동적인 것 같으면서도, 매우 수동적입니다. 이는 신앙의 주도권이 우리들에게 있지 않고 성령님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신앙을 갖는 것과 지키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것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성령님께 신앙을 맡기는 일을 매우 버거워합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우리에게는 신앙을 갖는 것도 지키는 것도 어렵게 느껴집니다. 신앙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령님께 맡겨 보십시오. 그러면 쉬워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가 있습니다. 성령님께 맡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성령님께 맡기는 것입니까? 한 번 고민해 볼 일입니다.

'고사성어와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안(無顔)  (0) 2011.07.14
무용지용(無用之用)  (0) 2011.07.05
연목구어(緣木求魚)  (0) 2011.06.29
문일지십(聞一知十)  (0) 2011.06.22
오리무중(五里霧中)  (0) 2011.06.15
Posted by 장준식
고사성어와 신앙2011. 6. 29. 21:39

연목구어(緣木求魚):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얻으려고 한다는 뜻


물고기를 얻으려면 시냇가로 가야 합니다
. 물고기를 얻으려고 나무 위에 오르는 일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 말은 맹자가 전국시대의 제나라 선왕에게 한 말입니다. “왕께서는 천하를 통일하고 오랑캐를 복종시키려는 대망이 있으나 무력으로 대망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연목구어는 그 뒤에 재앙을 당하는 일이 없지만 패자가 되려고 하다가 실패하면 나라가 멸망하게 됩니다.” 맹자는 선왕에게 백성들을 편안하게 살도록 하는 일에 먼저 힘쓰라고 간언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왜 십자가를 택하셨는가에 대해서 많은 의구심을 갖습니다. 유대인들이 바랐던 대로 다윗의 자손으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로마 군대를 몰아내고 강력한 군사력으로 세상 나라를 굴복시키면 더 손쉽고 속 시원할 텐데, ‘왜 저토록 힘 없이 무력하게 초라하게 비참하게 십자가에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매다는 방법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려 했는지이해가 안 갑니다. 그러나 만약 유대인들이 대망했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셨다면 이는 곧 연목구어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다면 하나님이나 세상 권세 잡은 자들이나 다를 게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힘만 센 하나님 밖에는 되지 못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을 이루신 것은 그분의 경륜이고 신비입니다. 우리는 때로 연목구어해서, 고기를 잡으러 나무에 올라가는 우를 범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목적을 위해 올바른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지혜 자체시기 때문에 지혜롭지 않은 일은 못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지혜로 우리가 구원 받았음을 잊지 맙시다.


'고사성어와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용지용(無用之用)  (0) 2011.07.05
수성지난(守成之難)  (0) 2011.07.04
문일지십(聞一知十)  (0) 2011.06.22
오리무중(五里霧中)  (0) 2011.06.15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  (0) 2011.06.08
Posted by 장준식
고사성어와 신앙2011. 6. 22. 03:59

문일지십(聞一知十) :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뜻/ 일부분을 듣고 다른 만사를 이해한다, 즉 머리가 매우 좋다는 말


공자의 문하생 중 자공과 안회가 있었습니다
. 하루는 공자가 자공에게 물었습니다. “너와 안회를 비교해 누가 낫다고 생각하느냐?” 그러자 자공이 대답했습니다. “저를 안회와 어떻게 비교하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사람(문일지십
聞一知十)이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깨우치는 사람(문일지이聞一知二)일 뿐입니다.” 공자의 문하생 중 자공은 말(언어 능력) 잘하는 사람으로, 안회는 덕행(인격)으로 그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자공은 그의 언어 능력 덕분에 장사 솜씨가 뛰어나 많은 부를 축적했고, 안회는 끼니조차 잇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공자는 개인적으로 제자 중에서 안회를 가장 아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안회가 요절(젊은 나이에 죽음)했다는 겁니다. 후계자로 생각했던 사랑하는 제자 안회가 죽자 공자는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라고 탄식했습니다.

 

세상 일은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더 오래 사셨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변했을까요? 세상은 덕행(인격)이 뛰어난 자를 그리워하지만 막상 덕행(인격)이 뛰어난 자가 나타나면 움츠러드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예수님을 물론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그러한 인격체와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이지만, 이 세상이 분명 감당할 수 없는 분이셨던 것만은 틀림 없습니다.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놀아나는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을 거스르고 변화시키는 참된 능력을 지닌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문일지십의 그리스도인! 십자가의 도 하나만 들어도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닫는 똑똑한 그리스도인 되어 세상을 떨게 만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시다.


Posted by 장준식
고사성어와 신앙2011. 6. 15. 01:00

오리무중(五里霧中): 사방 오리에 안개가 덮여 있는 속이라는 뜻 / 사물의 행방이나 사태의 추이를 알 길이 없음을 비유


짙은 안개 속을 걸어보신 적이 있나요
? 아니면 짙은 안개 속에서 운전해 보신 적이 있나요? 짙은 안개 속으로 들어가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듭니다. 짙은 안개 속에서 안전하게 이동하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천천히, 정말 천천히 가는 겁니다. 우리 인생은 오리무중입니다. 우리 인생은 짙은 안개 속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앞 날을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너무 빨리 갑니다. 오리무중에 있는 인생인데 왜 그렇게 빨리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고 나기 일쑤입니다.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집니다. 그러면 좀 속도를 늦추고 아주 천천히 가야 할 텐데, 여전히 우리는 그 와중에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습니다. 기도는 속도를 늦추는 일입니다. 오리무중의 인생 가운데,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안전하게 인생의 걸음을 옮기기 위한 처사입니다. 기도는 우리 인생의 속도를 높여주는 가속기가 아니라 우리 인생의 속도를 늦춰주는 브레이크입니다. 오리무중인 우리의 인생, 기도로 속도를 늦추어 갑시다. 그게 목적지까지 가는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