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에 해당되는 글 151건

  1. 2016.03.21
  2. 2016.02.04 반칙 세상
  3. 2016.01.31 밤 산책
  4. 2016.01.28 잠의 미학
  5. 2016.01.28 슬픈 사랑
  6. 2016.01.27 야로밀의 질문
  7. 2016.01.23 엄마의 자궁
  8. 2015.12.08 머리카락
  9. 2015.12.05 지구가 반대편으로 돈다면
  10. 2015.12.05 시론
  11. 2015.09.20 J의 달밤
  12. 2015.09.02 8월의 구름
  13. 2015.05.22 함부로 감사하지 마라
  14. 2015.05.12 이방인 2
  15. 2015.04.02 불혹2 2
시(詩)2016. 3. 21. 13:46

 

봄,

꽃 피우기 경연대회가 시작되었다.

경연대회 중일 때

누구든

그 안에 꽃을 품은 생명은

눈치 볼 필요 없이 마음껏

꽃을

세상에 펼쳐 보일 수 있다.

 

생명은

안에 쌓여 있는 것을 밖으로 내보낼 때

다소 왁자지껄하다.

이것은 미안한 일이 아니라

생명 고유의 성품이다.

 

그러므로

꽃이 얼굴을 드러내며 떨어뜨리는

꽃가루는

시대위를 향한 최루탄처럼

눈물을 만들어 내고

닫힌 공간에 꼭꼭 숨어 있게 만들지만,

그것이 비난을 불러오지는 않는다.

 

눈물은,

어딘가에 숨어 있어야 하는 일은,

이렇게 생명현상에서 오는 것만 허락될 수 있다.

그 외의

눈물, 숨바꼭질은

시위대를 향한 최루탄처럼

생명에 대한 철저한 반역이다.

 

꽃은 피어나며

눈물을 만들어내지만

생명을 헤치지 않는다.

그래서 봄은

생명이 꽃을 마음껏 피워내도록

꽃 피우기 경연대회를 열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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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시(詩)2016. 2. 4. 03:32

반칙 세상

 

새보다 먼저 일어나는 것은 반칙이다.

'꼬끼오' '짹짹'이든

신이 발명한 알람 소리에 화들짝 일어나야

창문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햇살도 반가운 법이다.

출근하며 건물들 사이로 뻐끔 보이는 태양이 노란색인 이유는

우주의 심판이 경고장을 가슴에서 꺼내 들었기 때문인 것이다.

어느 날 태양이 빨갛게 보인다면,

기억하라,

그건 석양처럼 찬란한 생명이

우주의 그라운드에서 퇴장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보다 먼저 일어나는 이는 부지런한 게 아니라

이미 시간을 착취당하는 세상에 발을 내딛었다는 것이다.

반칙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

새보다 먼저 눞고 먼저 일어나는 세상,

그 세상엔

바람보다 먼저 눞고 일어서는

풀조차 없다.

 

* 눞고는 눕고의 반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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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6. 1. 31. 12:32

밤 산책

 

깜깜한 밤, 산책을 하며 아이들에게 알려주었다.

 

가다가 길을 잃었거든 저기 북극성을 찾아보렴.

북극성은 카시오페아와 북두칠성 사이에 있단다.

그러니, 가다가 길을 잃더라도 너무 당황하지 말거라.

너희들이 길을 잃더라도

저기 저 하늘의 별은 변함 없이

저기 저 하늘에서 너희들을 바라보고 있단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밤은 오히려 가야할 길을 가르쳐 주는 별을 품고 있단다.

그러니, 혹시 인생을 살며 밤 길을 걷게 되더라도

너무 두려워하지 말거라.

밤은 오히려 너희들에게 빛이 되어 줄 거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솜털 살랑이는 고개를 들어,

밤 하늘의 별을 슬기롭게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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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미학

 

잠은 한 삶에서 다른 삶으로 공간이동 하게 하는 블랙홀

자고 일어 났는데

아직도 그 세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

나는 이제 다른 삶으로 공간이동 하기 위해

수면상태로 들어간다

다시는 존재하지 않을,

그래서 영원히 존재할

오늘의 삶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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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사랑

 

슬프도다, 법정 앞에 선 내 사랑이여!

그 눈망울에서는 분노가 뚝뚝 떨어졌고

그 입술에서는 불안이 맴돌았다.

눈망울은 흔들렸고

입술은 떨어지지 않아

몸속에 흐르던 피가 솟구쳐 올라

얌전하던 몸을 흔들어 댔다.

그것을 바라보던 이들의 시선은 두 갈래로 흩어졌고

판사와 청중들에게는 우스꽝스러웠으나

한 남자의 눈에는 파문을 일으킨 돌처럼 들어와 박혔다.

그 날 이후,

한 남자의 심장은 영원히 내려 앉았다.

사랑은 그렇게 왔다.

한 남자는 한 여자를

백정이 송아지의 겁먹은 눈을 사랑하듯*

사랑하게 되었다.

 

* 밀란 쿤데라의 <생은 다른 곳에>서 가져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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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로밀의 질문

 

  야로밀이 물었다.

"네 안에는 어떤 세계가 있니?"

.

.......

.

"네 안의 세계"

.

나에게 돈이 얼마나 있는지 묻는 사람은 있었어도 내 안에 어떤 세계가 있는지 묻는 사람은 없었다.

.

   야로밀이 말했다.

"너는 불쌍한 아이로구나."

.

한 번도 나는 나를 불쌍하다고 여겨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날 이후로 나는 내 안에 어떤 세계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 안에 있는 세계 대한 목마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

"네 바깥 세상은 네 안에 있는 세계에 비하면 누추하고 재미없단다. 네가 만약 네 안에 있는 세계를 발견하고 나면 이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할거란다. 네 안에 있는 세계 이외의 세계는 모두 신기루란다."

  야로밀이 말했다.

.

내 안의 세계, 불쌍한 아이, 신기루.. 알 수 없는 말들..

내 안에는 어떤 세계가 있을까.

목마르다.

  "너는?"

.

시간이 흘렀다.

내 안의 세계에 대한 목마름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바라본

거울에 비친 내 눈은 목마른 눈빛이 아니라

여전히 바깥 세상에서 그러던 것처럼

내 안의 세계를 염탐질만 하고 있었다.

.

삶은 아득하고,

  탐욕은 끝이 없다.

     삶은 이렇게 신기루로 끝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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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6. 1. 23. 05:45

엄마의 자궁

 

엄마의 자궁을 얕보지 마라.

엄마의 자궁만큼 신성한 곳이 이 세상에 있더냐.

생명은 신성한 곳에서만 잉태되느니라.

에덴동산이 타락했을 때조차도

엄마의 자궁은 신성하게 보존되었느니라.

하느님은 에덴동산을 엄마의 자궁으로 옮겨 놓았느니라.

엄마의 자궁을 얕보지 마라.

엄마의 자궁이 없었다면

에덴동산 이후의 역사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느니라.

태초에 시작된 생명의 역사가 소멸되지 않은 것은

모두 엄마의 신성한 자궁 덕분이니라.

엄마의 자궁이 존재하는 한

생명은 끊이지 않을 것이니라.

이렇게 신성한 엄마의 자궁을 더럽히는 자,

그런 자는 엄마의 자궁에서 잉태된 자가 아니니라.

그런 자를 일컬어 우리는

'사탄'이라 부르나니

그는 생명을 모르느니라.

엄마의 자궁에서 '생명'으로 잉태된 이들이여,

생명을 누릴지니라.

엄마의 자궁을 갈망하고 사랑할지니라.

네 생명이 어디에서 잉태되었는지

잊지 말지니라.

엄마의 자궁이 네 생명의 근원이니라.

신성한 엄마의 자궁에서 '생명'으로 잉태된 너는

신성한 존재이니라.

엄마의 자궁을 얕보지 마라.

네 생명을 잉태한 엄마의 자궁이 바로

에덴동산이니,

거기에 하느님이 거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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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5. 12. 8. 06:06

머리카락

 

내가 읽은 책들은 당신이 살아온 날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나는 자꾸 책만 읽어요. 그래서 그런지 내 머리카락은 자꾸 뜬 구름을 닮아가요.

우울한 날이면 나는 휘파람을 불죠. 그렇게 나는 가까스로 우울을 피해가요.

그런데 당신을 보니 나와는 달리 우울한 날에 휘파람을 불지 않네요.

나는 힐끗 보았죠. 당신이 눈물을 훔쳐내는 것을. 그리고 이내 웃는 것을. 나는 그날 하늘의 뜬 구름이 당신의 머리카락에 물드는 것을 보았어요. 그래서 당신의 머리카락은 내 머리카락보다 슬프고 강해요.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나는 자꾸 책만 읽어요. 내 머리카락이 자꾸 나쁘게 변해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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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5. 12. 5. 12:57

지구가 반대편으로 돈다면


 

지구가 반대편으로 돌면 시간이 거꾸로 흐를까?


그러면 방금 태어난 아기가 어른이 되고 방금 죽은 어른은 아기가 되는 거겠지?


방금 권력을 가진 자는 약자가 되는 거고,


방금 권력을 잃은 자는 강자가 되는 거고.


방금 부자가 된 자는 거지가 되는 거고,


방금 거지가 된 자는 부자가 되는 거고.


방금 병에서 놓임을 받은 자는 아프게 되는 거고,


방금 아프게 된 자는 병에서 놓임을 받는 거고.


지구가 이제부터 반대편으로 돌았으면 좋겠어.


아니, 지구가 반대편으로 돌다가


또 반대편으로 돌다가 또 반대편으로 돌다가 또 반대편으로 돌다가,


시간이 자꾸 거꾸로 흘렀으면 좋겠어.


그러면 사람들이 욕심 부리지 않을 텐데.


그러면 사람들이 불필요한 것을 차지하기 위해 인생을 낭비하지 않을 텐데.


그러면 우리 모두 아프지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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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5. 12. 5. 04:30

시론



시를 왜 읽나요?

 .

다른 세상에 다녀오기 위해서지.

 .

다른 세상은 왜 다녀와야 하나요?

 .

그래야 너가 만든 세상에 갇혀 있지 않을 수 있지.

 .

내가 만든 세상에 갇혀 있는게 위험한가요?

 .

그럼, 미쳐버릴걸!

 .

그렇군요. 그래서 이렇게 세상에 미친놈이 많은 거군요.

 .

오늘부터 난 시를 읽겠어요. 그런데 어떤 시부터 읽어야 하죠?

 .

너의 존재를 소외시키는 시.

 .

왜죠?

 .

그래야 이 세상의 아픔이 비로소 보일테니까.

 .

시를 읽는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군요.

 .

고통 없이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이룰 수 있지?

 .

(2015 12 3, 바로 이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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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5. 9. 20. 00:32

J의 달밤

 

달 밝은 밤

나는 분명 발가벗고 바깥에 서 있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 중 아무도

나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건 미스터리가 아니다

곁눈질조차 없던 그 거리에서

나는 뚝 뚝 녹아 내리는 달빛을

온 몸에 받으며

달빛 뒤로 숨을 수 밖에 없었다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건 슬픈 일이다

미안해서 슬픈 게 아니라

잊혀지기 때문에 슬픈 것이다

 

내가 사는 세상에 소풍 오는 천사들은 없었다

나에게 눈길을 주던 그 처녀는

장님이 되어버렸고

나에게 말을 걸어주던 그 청년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상대방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을 때

인간은 비로소 늙는다

 

달 밝은 밤 발가벗은 채로

나는 얼마나 더 힘들어야 하나

얼마나 더 부끄러워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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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5. 9. 2. 01:26

8월의 구름

 

8월의 끝자락,

표정 없이 부는 바람을 따라

눈을 들어 바라본 하늘,

8월의 구름은 슬프다

 

누군가의 여름이 가고 있다고

아주 뜨거웠다고

그러나 흔적조차 사라질 거라고,

8월의 구름은 체념에 홀린 듯

해지는 지평선 너머 어디론가

영영 흘러간다

 

떠나며 그가 남겨 놓은

색 바랜 나뭇잎 한 장

시들은 꽃잎 두 장

그리고 식어버린 바람

 

이제,

또 다른 전설이 시작될 거라고

빨갛게 물든 석양이

심장을 쓰다듬을 때

 

나는 우두커니 서쪽 하늘을 바라보다

그가 남긴

한 장의 나뭇잎과 두 장의 꽃잎을

식어버린 바람에 날리며

뜨거웠던 태양을 향해

심장을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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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감사하지 마라

 

함부로 감사하지 마라

이 순간만큼은

뻔뻔한 욥이 되어라

십자가 위에서 처참하게 죽어가면서도

자신이 왜 이처럼 고통에 처해져야 하는지

따져 물었던

용감한 예수가 되어라

신이 너에게 원하는 것은

값싼 감사가 아니니라

신이 너에게 원하는 것은

수줍은 어리광이 아니니라

신이 너에게 원하는 것은

억지 같은 투쟁이니라

네 비천함에 대한 저항이니라

너의 불행을 방관만 하고 있는,

무자비한,

부재하는 신에 대한 고발이

거꾸로 솟는 핏방울처럼

네 목젖을 힘껏 울리게 하라

가랑비 같은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말지어다

폭풍우 같은 분노의 눈물을 흘릴지어다

감사하는 자가 칭찬 받는 시대가 아니니

애통하는 자가 위로 받는 시대이나니

복을 받으려거든

우주의 법정에서

준엄하게

신을

기.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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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5. 5. 12. 10:42

이방인

 

나는 누군가에게 이방인이다

아니 나는 모두에게 이방인이다

저녁거리,

그 쓸쓸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노을로

고개를 돌리는 건

여기에서는 불경한 짓이다

그 너머 있는

무지개 마을을 상상하는 건

여기에서는 교수형감이다

이들에게 어제는 먼 미래와 같고

먼 미래는 태초와 같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마음조차

괴로운 상상인 것은

이들에게 내일은

아직 경험되지 못한

감각의 바깥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제 나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석양에 기울어지는 그림자만

나를 바싹 뒤쫓았을 뿐,

내가 거리를 돌며 본 건

옛날 사람들뿐이었다

그들에게서 발견한 오싹한 느낌,

그들은 모두 예전에

죽은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도대체 어느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아직 죽음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는

이 세상에 없는 이방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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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5. 4. 2. 04:52

불혹2

 

만인에 대한 나만의 투쟁

시끄러운 아우성

질풍노도의 늦은 시기

술고래가 되는 것으로도 부족한

이 허무의 바다에서

나는 다시 스무 살이 되는 꿈을 꾼다

가을 하늘만 공활한 것이 아니라

공활한 것으로 치자면

삼십역을 지나 오십역으로 가는 열차에 올라 탄,

그것도 세월의 차장에게 떠밀려

삼등열차 칸에 겨우 발을 디딘

불 같은 혹을 주렁주렁 단 혹부리 아저씨

가랑이 사이만큼이랴

이것이 차라리 입영열차였으면 좋겠다는

부질 없는 생각보다 더 부질 없는 것은

이제 깎아낼 머리카락 조차 없다는 것

이다

이제 아저씨의 철로는

아저씨의 배가 나온 만큼 가팔라질 거에요

그러나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 가파름 또한 젊은 시절만큼

일장춘몽일 테니까요

혹부리 아저씨가 탄 기차가 달려간다

악소리 나는 경적을 울려대며

담배를 뻑뻑 피워 대는 듯

희뿌연 연기를 머리에 껴 얹으며

종착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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