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에 해당되는 글 154건

  1. 2016.04.07 도마뱀의 탄식 1
  2. 2016.04.07 나는 죽어서 빛이 되고 싶어
  3. 2016.04.07 고흐의 그림을 봤다 1
  4. 2016.03.21
  5. 2016.02.04 반칙 세상
  6. 2016.01.31 밤 산책
  7. 2016.01.28 잠의 미학
  8. 2016.01.28 슬픈 사랑
  9. 2016.01.27 야로밀의 질문
  10. 2016.01.23 엄마의 자궁
  11. 2015.12.08 머리카락
  12. 2015.12.05 지구가 반대편으로 돈다면
  13. 2015.12.05 시론
  14. 2015.09.20 J의 달밤
  15. 2015.09.02 8월의 구름
시(詩)2016. 4. 7. 00:16

도마뱀의 탄식

 

이럴줄 알았으면 잠이나 더 잘 걸 그랬어.

겨울잠 자는 동안

추운지 몰랐고

세월 가는지 몰랐고

세상 변하는지 몰랐어.

그야말로 꿈 속에 살아서

한 숨 쉴 일 없어

팔랑팔랑 거렸어.

나를 깨운 건

지나가는 행인의

재채기였어.

어쩐지 나른했고

어쩐지 코가 간질거리더니

잠에서 깨어보니

아지랭이 춤추는

봄이 온거였어.

꽃내음을 따라

동그란 은신처를 빠져나와

첫발을 세상에 내디뎠는데,

글쎄,

이렇게 덫에 걸려버렸네.

나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어.

꿈이었으면 좋겠어.

아직 잠에서 깬 게 아니라면 좋겠어.

하늘은 저렇게 푸르고

햇살은 이리도 따스한데,

내 몸은 점점 차가워지고 있어.

인생 정말 일장춘몽이네.

나는 지금 덫에 걸린채

비닐봉지에 싸여 쓰레기통에 막 버려졌어.

이럴줄 알았으면 잠이나 더 잘 걸 그랬어.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흔 고개  (0) 2016.04.07
존재의 이유  (0) 2016.04.07
나는 죽어서 빛이 되고 싶어  (0) 2016.04.07
고흐의 그림을 봤다  (1) 2016.04.07
  (0) 2016.03.21
Posted by 장준식
시(詩)2016. 4. 7. 00:11

나는 죽어서 빛이 되고 싶어

 

나는 죽어서 빛이 되고 싶어

별빛도 좋고

달빛도 좋고

햇빛도 좋아

이건 너무 거창한가

그럼

창문에 나부끼는 별 그림자

출렁이는 강물에 새겨지는 달 그림자

버즘나무 밑으로 스며드는 해 그림자

이런 게 되어도 좋아

그림자도 빛이니까

이런 것도 거창하다면

반딧불이 빛이 되면 어때

아이들의 오그린 손바닥만한 빛이지만

한 여름 밤을 다 채우고도 남을 만큼

낭만적이잖아

다만

눈빛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만나본 세상의 모든 눈빛은

슬펐어

빛이 슬프면 안 되잖아

빛은 희망이어야 되잖아

나는 죽어서 빛이 되고 싶어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재의 이유  (0) 2016.04.07
도마뱀의 탄식  (1) 2016.04.07
고흐의 그림을 봤다  (1) 2016.04.07
  (0) 2016.03.21
반칙 세상  (0) 2016.02.04
Posted by 장준식
시(詩)2016. 4. 7. 00:10

고흐의 그림을 봤다

 

고흐의 그림을 봤다

거기에 사람이 누워 있다

그 사람에게서 물감이 솟아난다

어떤 것은 하늘 색이고

어떤 것은 별 색이고

어떤 것은 나무 색이다

어떤 것은 밝은 색이고

어떤 것은 어둔 색이고

어떤 것은 희미한 색이다

그 사람의 표정이 밝으면

그 사람에게서 솟아나는 물감은

해바라기 꽃이 되고

그 사람의 표정이 어두우면

그 사람에게서 솟아나는 물감은

별이 빛나는 밤이 된다

고흐의 그림에서 사람을 봤다

이제 보니 고흐는

그림을 그린 게 아니라

사람을 그린 것이다

그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슬프지만 따스하다

그래서 고흐의 그림은

찬란한 휴머니즘이다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마뱀의 탄식  (1) 2016.04.07
나는 죽어서 빛이 되고 싶어  (0) 2016.04.07
  (0) 2016.03.21
반칙 세상  (0) 2016.02.04
밤 산책  (0) 2016.01.31
Posted by 장준식
시(詩)2016. 3. 21. 13:46

 

봄,

꽃 피우기 경연대회가 시작되었다.

경연대회 중일 때

누구든

그 안에 꽃을 품은 생명은

눈치 볼 필요 없이 마음껏

꽃을

세상에 펼쳐 보일 수 있다.

 

생명은

안에 쌓여 있는 것을 밖으로 내보낼 때

다소 왁자지껄하다.

이것은 미안한 일이 아니라

생명 고유의 성품이다.

 

그러므로

꽃이 얼굴을 드러내며 떨어뜨리는

꽃가루는

시대위를 향한 최루탄처럼

눈물을 만들어 내고

닫힌 공간에 꼭꼭 숨어 있게 만들지만,

그것이 비난을 불러오지는 않는다.

 

눈물은,

어딘가에 숨어 있어야 하는 일은,

이렇게 생명현상에서 오는 것만 허락될 수 있다.

그 외의

눈물, 숨바꼭질은

시위대를 향한 최루탄처럼

생명에 대한 철저한 반역이다.

 

꽃은 피어나며

눈물을 만들어내지만

생명을 헤치지 않는다.

그래서 봄은

생명이 꽃을 마음껏 피워내도록

꽃 피우기 경연대회를 열어주는 것이다.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죽어서 빛이 되고 싶어  (0) 2016.04.07
고흐의 그림을 봤다  (1) 2016.04.07
반칙 세상  (0) 2016.02.04
밤 산책  (0) 2016.01.31
잠의 미학  (0) 2016.01.28
Posted by 장준식
시(詩)2016. 2. 4. 03:32

반칙 세상

 

새보다 먼저 일어나는 것은 반칙이다.

'꼬끼오' '짹짹'이든

신이 발명한 알람 소리에 화들짝 일어나야

창문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햇살도 반가운 법이다.

출근하며 건물들 사이로 뻐끔 보이는 태양이 노란색인 이유는

우주의 심판이 경고장을 가슴에서 꺼내 들었기 때문인 것이다.

어느 날 태양이 빨갛게 보인다면,

기억하라,

그건 석양처럼 찬란한 생명이

우주의 그라운드에서 퇴장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보다 먼저 일어나는 이는 부지런한 게 아니라

이미 시간을 착취당하는 세상에 발을 내딛었다는 것이다.

반칙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

새보다 먼저 눞고 먼저 일어나는 세상,

그 세상엔

바람보다 먼저 눞고 일어서는

풀조차 없다.

 

* 눞고는 눕고의 반칙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흐의 그림을 봤다  (1) 2016.04.07
  (0) 2016.03.21
밤 산책  (0) 2016.01.31
잠의 미학  (0) 2016.01.28
슬픈 사랑  (0) 2016.01.28
Posted by 장준식
시(詩)2016. 1. 31. 12:32

밤 산책

 

깜깜한 밤, 산책을 하며 아이들에게 알려주었다.

 

가다가 길을 잃었거든 저기 북극성을 찾아보렴.

북극성은 카시오페아와 북두칠성 사이에 있단다.

그러니, 가다가 길을 잃더라도 너무 당황하지 말거라.

너희들이 길을 잃더라도

저기 저 하늘의 별은 변함 없이

저기 저 하늘에서 너희들을 바라보고 있단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밤은 오히려 가야할 길을 가르쳐 주는 별을 품고 있단다.

그러니, 혹시 인생을 살며 밤 길을 걷게 되더라도

너무 두려워하지 말거라.

밤은 오히려 너희들에게 빛이 되어 줄 거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솜털 살랑이는 고개를 들어,

밤 하늘의 별을 슬기롭게 쳐다보았다.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16.03.21
반칙 세상  (0) 2016.02.04
잠의 미학  (0) 2016.01.28
슬픈 사랑  (0) 2016.01.28
야로밀의 질문  (0) 2016.01.27
Posted by 장준식
시(詩)2016. 1. 28. 03:38

잠의 미학

 

잠은 한 삶에서 다른 삶으로 공간이동 하게 하는 블랙홀

자고 일어 났는데

아직도 그 세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

나는 이제 다른 삶으로 공간이동 하기 위해

수면상태로 들어간다

다시는 존재하지 않을,

그래서 영원히 존재할

오늘의 삶이여,

안녕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칙 세상  (0) 2016.02.04
밤 산책  (0) 2016.01.31
슬픈 사랑  (0) 2016.01.28
야로밀의 질문  (0) 2016.01.27
엄마의 자궁  (0) 2016.01.23
Posted by 장준식
시(詩)2016. 1. 28. 03:36

슬픈 사랑

 

슬프도다, 법정 앞에 선 내 사랑이여!

그 눈망울에서는 분노가 뚝뚝 떨어졌고

그 입술에서는 불안이 맴돌았다.

눈망울은 흔들렸고

입술은 떨어지지 않아

몸속에 흐르던 피가 솟구쳐 올라

얌전하던 몸을 흔들어 댔다.

그것을 바라보던 이들의 시선은 두 갈래로 흩어졌고

판사와 청중들에게는 우스꽝스러웠으나

한 남자의 눈에는 파문을 일으킨 돌처럼 들어와 박혔다.

그 날 이후,

한 남자의 심장은 영원히 내려 앉았다.

사랑은 그렇게 왔다.

한 남자는 한 여자를

백정이 송아지의 겁먹은 눈을 사랑하듯*

사랑하게 되었다.

 

* 밀란 쿤데라의 <생은 다른 곳에>서 가져 옴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 산책  (0) 2016.01.31
잠의 미학  (0) 2016.01.28
야로밀의 질문  (0) 2016.01.27
엄마의 자궁  (0) 2016.01.23
머리카락  (0) 2015.12.08
Posted by 장준식
시(詩)2016. 1. 27. 02:38

야로밀의 질문

 

  야로밀이 물었다.

"네 안에는 어떤 세계가 있니?"

.

.......

.

"네 안의 세계"

.

나에게 돈이 얼마나 있는지 묻는 사람은 있었어도 내 안에 어떤 세계가 있는지 묻는 사람은 없었다.

.

   야로밀이 말했다.

"너는 불쌍한 아이로구나."

.

한 번도 나는 나를 불쌍하다고 여겨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날 이후로 나는 내 안에 어떤 세계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 안에 있는 세계 대한 목마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

"네 바깥 세상은 네 안에 있는 세계에 비하면 누추하고 재미없단다. 네가 만약 네 안에 있는 세계를 발견하고 나면 이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할거란다. 네 안에 있는 세계 이외의 세계는 모두 신기루란다."

  야로밀이 말했다.

.

내 안의 세계, 불쌍한 아이, 신기루.. 알 수 없는 말들..

내 안에는 어떤 세계가 있을까.

목마르다.

  "너는?"

.

시간이 흘렀다.

내 안의 세계에 대한 목마름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바라본

거울에 비친 내 눈은 목마른 눈빛이 아니라

여전히 바깥 세상에서 그러던 것처럼

내 안의 세계를 염탐질만 하고 있었다.

.

삶은 아득하고,

  탐욕은 끝이 없다.

     삶은 이렇게 신기루로 끝나는 것인가.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의 미학  (0) 2016.01.28
슬픈 사랑  (0) 2016.01.28
엄마의 자궁  (0) 2016.01.23
머리카락  (0) 2015.12.08
지구가 반대편으로 돈다면  (0) 2015.12.05
Posted by 장준식
시(詩)2016. 1. 23. 05:45

엄마의 자궁

 

엄마의 자궁을 얕보지 마라.

엄마의 자궁만큼 신성한 곳이 이 세상에 있더냐.

생명은 신성한 곳에서만 잉태되느니라.

에덴동산이 타락했을 때조차도

엄마의 자궁은 신성하게 보존되었느니라.

하느님은 에덴동산을 엄마의 자궁으로 옮겨 놓았느니라.

엄마의 자궁을 얕보지 마라.

엄마의 자궁이 없었다면

에덴동산 이후의 역사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느니라.

태초에 시작된 생명의 역사가 소멸되지 않은 것은

모두 엄마의 신성한 자궁 덕분이니라.

엄마의 자궁이 존재하는 한

생명은 끊이지 않을 것이니라.

이렇게 신성한 엄마의 자궁을 더럽히는 자,

그런 자는 엄마의 자궁에서 잉태된 자가 아니니라.

그런 자를 일컬어 우리는

'사탄'이라 부르나니

그는 생명을 모르느니라.

엄마의 자궁에서 '생명'으로 잉태된 이들이여,

생명을 누릴지니라.

엄마의 자궁을 갈망하고 사랑할지니라.

네 생명이 어디에서 잉태되었는지

잊지 말지니라.

엄마의 자궁이 네 생명의 근원이니라.

신성한 엄마의 자궁에서 '생명'으로 잉태된 너는

신성한 존재이니라.

엄마의 자궁을 얕보지 마라.

네 생명을 잉태한 엄마의 자궁이 바로

에덴동산이니,

거기에 하느님이 거하시느니라.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픈 사랑  (0) 2016.01.28
야로밀의 질문  (0) 2016.01.27
머리카락  (0) 2015.12.08
지구가 반대편으로 돈다면  (0) 2015.12.05
시론  (0) 2015.12.05
Posted by 장준식
시(詩)2015. 12. 8. 06:06

머리카락

 

내가 읽은 책들은 당신이 살아온 날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나는 자꾸 책만 읽어요. 그래서 그런지 내 머리카락은 자꾸 뜬 구름을 닮아가요.

우울한 날이면 나는 휘파람을 불죠. 그렇게 나는 가까스로 우울을 피해가요.

그런데 당신을 보니 나와는 달리 우울한 날에 휘파람을 불지 않네요.

나는 힐끗 보았죠. 당신이 눈물을 훔쳐내는 것을. 그리고 이내 웃는 것을. 나는 그날 하늘의 뜬 구름이 당신의 머리카락에 물드는 것을 보았어요. 그래서 당신의 머리카락은 내 머리카락보다 슬프고 강해요.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나는 자꾸 책만 읽어요. 내 머리카락이 자꾸 나쁘게 변해가고 있어요.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로밀의 질문  (0) 2016.01.27
엄마의 자궁  (0) 2016.01.23
지구가 반대편으로 돈다면  (0) 2015.12.05
시론  (0) 2015.12.05
J의 달밤  (0) 2015.09.20
Posted by 장준식
시(詩)2015. 12. 5. 12:57

지구가 반대편으로 돈다면


 

지구가 반대편으로 돌면 시간이 거꾸로 흐를까?


그러면 방금 태어난 아기가 어른이 되고 방금 죽은 어른은 아기가 되는 거겠지?


방금 권력을 가진 자는 약자가 되는 거고,


방금 권력을 잃은 자는 강자가 되는 거고.


방금 부자가 된 자는 거지가 되는 거고,


방금 거지가 된 자는 부자가 되는 거고.


방금 병에서 놓임을 받은 자는 아프게 되는 거고,


방금 아프게 된 자는 병에서 놓임을 받는 거고.


지구가 이제부터 반대편으로 돌았으면 좋겠어.


아니, 지구가 반대편으로 돌다가


또 반대편으로 돌다가 또 반대편으로 돌다가 또 반대편으로 돌다가,


시간이 자꾸 거꾸로 흘렀으면 좋겠어.


그러면 사람들이 욕심 부리지 않을 텐데.


그러면 사람들이 불필요한 것을 차지하기 위해 인생을 낭비하지 않을 텐데.


그러면 우리 모두 아프지 않을 텐데.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의 자궁  (0) 2016.01.23
머리카락  (0) 2015.12.08
시론  (0) 2015.12.05
J의 달밤  (0) 2015.09.20
8월의 구름  (0) 2015.09.02
Posted by 장준식
시(詩)2015. 12. 5. 04:30

시론



시를 왜 읽나요?

 .

다른 세상에 다녀오기 위해서지.

 .

다른 세상은 왜 다녀와야 하나요?

 .

그래야 너가 만든 세상에 갇혀 있지 않을 수 있지.

 .

내가 만든 세상에 갇혀 있는게 위험한가요?

 .

그럼, 미쳐버릴걸!

 .

그렇군요. 그래서 이렇게 세상에 미친놈이 많은 거군요.

 .

오늘부터 난 시를 읽겠어요. 그런데 어떤 시부터 읽어야 하죠?

 .

너의 존재를 소외시키는 시.

 .

왜죠?

 .

그래야 이 세상의 아픔이 비로소 보일테니까.

 .

시를 읽는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군요.

 .

고통 없이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이룰 수 있지?

 .

(2015 12 3, 바로 이날부터)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머리카락  (0) 2015.12.08
지구가 반대편으로 돈다면  (0) 2015.12.05
J의 달밤  (0) 2015.09.20
8월의 구름  (0) 2015.09.02
함부로 감사하지 마라  (0) 2015.05.22
Posted by 장준식
시(詩)2015. 9. 20. 00:32

J의 달밤

 

달 밝은 밤

나는 분명 발가벗고 바깥에 서 있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 중 아무도

나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건 미스터리가 아니다

곁눈질조차 없던 그 거리에서

나는 뚝 뚝 녹아 내리는 달빛을

온 몸에 받으며

달빛 뒤로 숨을 수 밖에 없었다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건 슬픈 일이다

미안해서 슬픈 게 아니라

잊혀지기 때문에 슬픈 것이다

 

내가 사는 세상에 소풍 오는 천사들은 없었다

나에게 눈길을 주던 그 처녀는

장님이 되어버렸고

나에게 말을 걸어주던 그 청년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상대방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을 때

인간은 비로소 늙는다

 

달 밝은 밤 발가벗은 채로

나는 얼마나 더 힘들어야 하나

얼마나 더 부끄러워야 하나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구가 반대편으로 돈다면  (0) 2015.12.05
시론  (0) 2015.12.05
8월의 구름  (0) 2015.09.02
함부로 감사하지 마라  (0) 2015.05.22
이방인  (2) 2015.05.12
Posted by 장준식
시(詩)2015. 9. 2. 01:26

8월의 구름

 

8월의 끝자락,

표정 없이 부는 바람을 따라

눈을 들어 바라본 하늘,

8월의 구름은 슬프다

 

누군가의 여름이 가고 있다고

아주 뜨거웠다고

그러나 흔적조차 사라질 거라고,

8월의 구름은 체념에 홀린 듯

해지는 지평선 너머 어디론가

영영 흘러간다

 

떠나며 그가 남겨 놓은

색 바랜 나뭇잎 한 장

시들은 꽃잎 두 장

그리고 식어버린 바람

 

이제,

또 다른 전설이 시작될 거라고

빨갛게 물든 석양이

심장을 쓰다듬을 때

 

나는 우두커니 서쪽 하늘을 바라보다

그가 남긴

한 장의 나뭇잎과 두 장의 꽃잎을

식어버린 바람에 날리며

뜨거웠던 태양을 향해

심장을 쏜다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론  (0) 2015.12.05
J의 달밤  (0) 2015.09.20
함부로 감사하지 마라  (0) 2015.05.22
이방인  (2) 2015.05.12
불혹2  (2) 2015.04.02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