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2012. 12. 2. 22:59

기억에 대한 나의 몫

 

언뜻보면 탈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작은 덩치를 가진 화물차 한 대가

제몸을 불사르고 있었다

 

가스차랴 가까이 가지 말아유

 

부근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인부 한 명이

그곳을 지나가려하는 제지하며

겁을 주었다

이내 차들은 낭패다 싶은지 지나가지 못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었다

하나 둘 불구경 나온 사람들로

주위는 웅성웅성 댔고, 잠시후

그 어수선한 분위기를 가르며

어디에선가 싸이렌을 켠 불자동차 한 대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진화는 어렵지 않게 끝이 났다 그리고

무슨 기대를 품었었는지는 몰라도

아쉽다는 듯이

사람들은 제갈길로 향했다

잠시동안

더딘 차량의 행렬이 그 상황을

말해주고 있을뿐 그 누구도 더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 듯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을 만나

지나가는 화제話題 그 화재火災

끄집어 낼지 말지는

그것을 본 사람들의 몫이겠지만

나는

나의 몫만큼 그때의 기억을 여기에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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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2. 12. 2. 10:24

가로등 풍경

 

허공에 기댄 듯 기울어져 있는 가로등을 기둥 삼아

세월을 이겨낸 거미집이 허름하게 널려있다

하얀 등불 밑으로 수많은 벌레들이 지나다니다

어떤 놈은 피해가듯 거미집을 그냥 지나치는데

어떤 놈은 호기심에 가득 찬 듯 기웃거린다

방금 큼지막한 나방 한 마리가 거미집으로

손님처럼 들어와 집 한 가운데 좌정해 앉았다

주인장 거미는 멀찌감치서 음흉한 미소를 보내고

나방은 자신의 운명을 뒤늦게 깨달은 양 움찔대고 있다

 

가로등은 그림자만 만들어내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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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2. 12. 1. 01:08

한 사람을 위한 고독

 

불빛은 모두 무언가를 기다린다

 

등대는 배를 기다리고

가로등은 행인을 기다리고

호롱불은 바느질을 기다리고

별빛은 영혼을 기다리고

달빛은 소원을 기다리고

햇볕은 나그네를 기다리고

눈빛은 사랑을 기다리고

 

내 마음은 너를 기다린다

그래서 내 마음은 이렇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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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법정과 천국법정

 

법정에 가면 사람들간의 약속인 법을 어긴 사람들이 판사 앞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검사는 기소를 하고, 변호사는 변호를 해줍니다. 판사는 최대한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그것이 공정한 재판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판결이 나올 때마다 원고든 피고든 어느 한 쪽은 판결에 불만을 제기합니다. 그래서 항소합니다. 그러나 평생 동안 진행되는 재판도 아니고, 완벽하게 공정한 판결이 나올 때까지 재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느 순간이 되면, 좋든 싫든 판사의 판결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사실 재판제도는 하나님의 정의를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완벽하게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없습니다. 완벽하게 판결할 수 있을 만큼의 지혜를 인간은 지니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십계명 중에서 도적질 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등의 조항들은 사회법정에서도 취급되지만, 1계명에서 제 4계명까지의 조항들은 사회법정에서 다루어지지도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십계명의 제 1계명에서 제 4명까지만 완벽하게 지켜도, 나머지 계명들은 자연스럽게 지켜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법정이 필요 없겠죠. 하지만 사회법정이 필요한 이유는 사회법정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죄목들(특별히 우상숭배)이 잘 지켜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과 하나님이 대적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회법정에서 다루어지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사회법정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즉 우상숭배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일을 절대로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절대로 이웃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회법정에서나 천국법정에서나 부끄러움을 당할 일이 없겠죠.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당당하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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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2. 11. 29. 06:08

생선 아줌마

 

두 시간에 한 번씩 시내버스 드나들던 시절

생선 아줌마 머리에 생선 이고

생선 팔러 오시면

엄마는 늘 생선 아줌마에게서 생선을 샀다

 

새마을 운동이다 산업화다 해서

도시가 개발되고 대중교통이 발달되고 나니

생선 아줌마는 더 이상 머리에 생선을 이고 다니지 않고

아예 말죽거리 한 구석에 노점상을 차리셨다

 

시내버스 타고 말죽거리로 시장 보러 다니신 엄마는

다른 것은 몰라도 생선은 꼭 그 아줌마에게서 샀다

생선 아줌마가 내다파는 생선이 물 좋다고 하시며

 

그러기를 20여 년

어느새 생선 아줌마도 늙고 우리 엄마도 늙고

어느 날 생선 사러 갔던 엄마는

생선 아줌마 아들이 장가 간다는 청첩장을 들고 오셨다

생선 팔아 두 아들 대학까지 보내시고

이제 아들이 결혼까지 한단다

 

그것도 인연이라고

생선 아줌마에게 받은 청첩장을 들고

엄마는 곱게 차려 입고 결혼식장에 다녀오셨다

그간 물 좋은 생선으로 비린내 나게 맺어진 우정인양

두둑하게 부조扶助하고 오셨단다

 

그래도 내가

그렇게 인정머리 없는 인간이 아닌 것을 보면

엄마를 닮은 게 분명하다

 

생선 아줌마의 허리도

고등어처럼 휘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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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2. 11. 29. 00:35

데생

 

시간이 흐른다

나도 흐른다

멈추지 않는다

나또한 멈추지 않는다

 

이 시간이 지나고나면

태초의 그곳으로

 

하나 둘씩 사라져 간다

우리 모두가 사라져 간다

울음은 시작이 아니고

손떨림은 끝이 아니다

시작과 끝은 다만

무언無言

 

나의 이야기는 지워지고

나의 그림은 다시 그려진다

색이 없는 한 줄의 데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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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2. 11. 28. 02:43

소나기

 

소녀의 작은 꿈을 안고

머얼리 사라져 간 구름인가

아직도 산은 저렇게 푸르른데

그립다 못해 울어 버린 맑은 하늘이여

 

개울물도 조가비도

하얀 그 조약돌도

이젠 영원히 사라진 슬픈 추억인데

보랏빛 노을은 오늘도 이렇게 지는구나

 

 

* 황순원 님의 소설 <소나기> 읽고 시입니다.

추억이 아련합니다.

가슴이 아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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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와 신앙2012. 11. 26. 03:44

개과천선(改過遷善): 지난 허물을 고치고 착하게

 

()나라 혜제 때 양흠 지방에 주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태수 벼슬을 한 주처의 아버지 주방은 주처의 나이 열 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주처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없어져 하루 종일 하릴없이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힘이 천하장사였던 주처는 걸핏하면 남을 두들겨 패는 포악한 사람이 되어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시간이 흘러 주처는 철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지난 허물을 고쳐서 새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으나, 마을 사람들은 그의 결심을 아무도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처는 마을 사람들에게어떻게 하면 마을 사람들이 평안하겠냐고 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남산의 호랑이, 장교(長橋)의 교룡(蛟龍)과 더불어 주처를 삼해(三害,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세 가지 존재)라고 여겼는데, 삼해가 모두 없어지면 평안하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눈엣가시 같은 주처가 호랑이와 교룡에게 죽기를 바라고 이런 제안을 한 것입니다. 주처는 목숨을 건 사투 끝에 호랑이와 교룡을 죽이고 마을로 돌아왔으나 아무도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실망한 그는 마을을 떠났고 동오(東吳)에 가서 학자 육기(陸機)를 만나게 되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육기는, “굳은 의지를 지니고 지난날의 과오를 고쳐서 새사람이 된다면(改過遷善) 자네의 앞날은 무한하네.”라고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주처는 이에 용기를 얻어 이후 10여 년 동안 학문과 덕을 익혀 마침내 대학자가 되었습니다. - 진서(晉書) 본전(本傳) –

 

성경의 인물 중 누구니 누구니 해도 개과천선의 대표적인 인물은 바울 사도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의 부활 이후 개과천선 한 인물이라고 생각될 수 있으나, 베드로는 적어도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인물은 아니었으니 그를 일컬어 개과천선 한 인물이라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상황이 다릅니다. 그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전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예수 믿는 자에게 해악을 엄청나게 끼친 인물이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이 사람을 개과천선 이전에는 사울이라고 부르고 개과천선 이후에는 바울이라고 부릅니다. 사울은 지극히 큰 자라는 뜻이고 바울은 지극히 작은 자라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이름 뜻에서도 나타나듯이 사울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자신의 행동이 해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유대교 열성분자였던 그는 하나님의 뜻이 담긴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 하나님을 위해서 정의로운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보통 어떤 사람이 남에게 해악을 끼칠 때는 이러한 현상이 지배적입니다. 그것이 남에게 해악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은 어떠한 명분에 의해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는 것이죠. 그야말로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겁니다.

 

자칭 정의로운 일을 수행하던 사울은 어느날 정의를 집행하러 다메색으로 가던 도중 부활의 주님을 만납니다. 그는 생전에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르던 사람입니다. 그는 다메색 도상에서 예수님을 빛의 형태로 경험합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음성을 듣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박해하느냐?” 상당히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낯설기 보다 황홀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황홀한 경험 때문에 사울은 앞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예수님의 지시대로 한 그리스도인의 집(아나니아)에 가서 그의 기도를 받은 후에 눈이 뜨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개과천선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빛으로 경험하고 눈이 멀었다 떴을 때(기도하고 떴을 때) 같은 눈이지만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바로 그 상태. 자칭 정의를 수행하던 지극히 큰 자 사울은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개과천선을 경험하고 그리스도의 정의를 수행하는 지극히 작은 자 사울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뭔가 대단한 존재가 된 것처럼 우쭐해져서 자신을 큰 존재로 여기지만, 그리스도께서 옳다고 인정하시는 일을 행하는 사람은 자신을 낮출 줄 알게 되어 지극히 작은 자로 존재하는 것에 만족하게 됩니다.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개과천선은 참으로 신비로운 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개과천선한 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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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2. 11. 23. 05:37

선술집

 

자그마한 선술집에는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몸과 마음을 달래려고 모인 사람들

이들은 서로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며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

그 중 진한 남부 사투리를 쓰는 한 사람은

안면이 있는 배관공이다

몇 번 보지 않았지만 자주 본 사람처럼 인사를 건넨다

일터가 아닌 쉼터에서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써빙 보는 여인네는

낯에는 토이스러스에서 일하고

밤에는 이렇게 선술집에서 일한다고 한다

밤낮으로 일할 수 밖에 없는 삶의 고단함이

그의 표정에서 묻어난다

병색이 짙은 한 여인은

사람들과 당구를 치면서 까르르 웃는다

불치병에 걸린 이 여인은

정부에서 주는 생활비로 살아간다고 한다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이 여인은

이렇게 밤마다 선술집에 와서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고 한다

이 여인은 자동차가 없단다

그래서 선술집 친구들이

번갈아 가면서 이 여인에게 차편을 제공한단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의 마음은

먹을 것이 넉넉한 사람들보다

씀씀이가 좋은 것 같다

이들이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던 친구가

목사인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이들에게는 여기가 교회야

그 순간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은 찬송으로 화하고

사람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는 기도 소리로 화한다

그래 적어도

목사인 내가 여기에 와서 이들과 삶을 나누는 이 순간만은

선술집이 교회로 화할 수 있지 않을까?

선술집 성도들과 삶을 나누며 마신 칵테일 한 잔이

나를 취하게 한다

나는 지금 술에 취해

사람 냄새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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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2. 11. 19. 17:41

느낌표

 

생각을 열어두기 위해 마침표를 찍지 않겠어

생각하다 힘들면 잠시 쉴 수 있도록 쉼표를 놓아 두겠어

생각이 모자랄 때는 도움을 구할 수 있도록 따옴표를 걸어 두겠어

그러다 질문이 생기면 언제든지 물을 수 있도록 물음표를 세워두겠어

생각의 끝에 뭔가를 깨달았다면 내가 숨겨둔 이것을 쓰도록 해: 느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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