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 시편 26편 - 부족하지만 경건한 의인의 마음
오늘은 시편 26편을 묵상하면서 하루를 열어봅니다.
시편 26편은 성경에 담긴 150편의 시편 중, 그냥 평범한 아저씨 같은 시편입니다. 읽고 나도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 시편입니다. 탄원시로서,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시편은 아닙니다. 마음에 남는 멋진 구절이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시편 26편을 읽고 나니까, 윤동주의 서시가 떠올랐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다윗의 시라고 알려진 이 시편을 읽으며, 다윗의 마음과 윤동주의 마음이 오버랩 되는 것 같았는데요, 질곡이 많은 시절을 살았던 윤동주가 ‘부끄러움 없이 살기’를 바랐던 것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다윗도 ‘부끄러움 없이 살기’를 바랐던, 그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죠.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우리는 살면서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 부끄러움을 바깥으로 표출하지 않을 뿐이지, 우리는 홀로 있는 시간에 부끄러움 때문에 잠 못 이룰 때가 많습니다.
다윗의 삶도 그랬습니다. 성경에서 다윗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입니다. 형들한테 미움을 받고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 자수성가한 요셉 정도가 있을까요? 다윗은 왕이었고, 주변 나라들과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을 벌인 터라, 주변에 원수가 널려 있었습니다. 외부의 적도 많았고, 내부의 적도 많았죠. 자식들 때문에 죽도록 고생도 하고,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아픔과 상처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편 26편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에게 이러한 요청을 합니다.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양심을 단련하소서”(1절). 사실,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없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면,
부끄러움 천지인데, 하나님께, ‘나는 진실하게
살아왔다고, 나를 시험해 보시고, 내 마음과 생각을 샅샅이
살펴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부끄러움도 없는 사람이기에, 뻔뻔하게
하나님 앞에서 그러한 요청을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것을 알아야 하는데요, 다윗이 의지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헤쎄드, 인자로 번역되고 있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입니다. 악인과 의인의 차이가 여기서 발생하는데요, 악인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의인은 죄를 하나도 짓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죄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믿는 사람이죠. 그래서 의인은 어느 순간에서도, 자신의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에 기대어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3-5절).
시편 26편에서 시인은 세상의 두 무리를 상정하고 있는데요, 하나는 행악자의 무리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는’ 의인의 무리입니다. 시인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한다고 말하고 있고,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들의 집회’는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임마누엘 칸트라는 철학자가 있는데요, 그의 묘비명에는 이런 문구가 써 있다고 합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놀라움과 경건함을 주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내 위에서 항상 반짝이는 별을 보여주는 하늘이며, 다른 하나는 나를 항상 지켜주는 마음속의 도덕률이다.” 이것을 줄여, 흔히, “하늘엔 빛나는 별, 내 마음엔 도덕률”이라고 말하죠. 칸트는 우리 인간의 마음 속에서는 우리의 행위를 결정하는 어떠한 도덕률이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자연법칙처럼, 박혀 있다고 보았습니다. 도덕은 강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니고 있는 본성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자유라고 보았죠. 그래서 그는 ‘옳은 것이 좋은 것보다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옳은 것이 좋은 것보다 먼저다!” 참 멋진 말이죠. 사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넓게 봐서, ‘좋은 것’과 ‘옳은 것’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니가 좋아하는 것을 해!’ 여기에는 이런 명제가 깔린 것이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런데, 칸트는 그러한 현대인들의 생각에 제동을 거는 것이죠. 아니다! 좋아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옳은 것이 먼저다.
어떠세요? 참 쉽지 않죠? 여러분들은 좋은 것을 행하고 계신가요? 아니면, 옳은 것을 행하고 계신가요? 판단하기 쉽지 않죠?
하지만, 한 가지, 오늘 시편에서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 중에,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시인은 ‘악인들의 집회’는 미워하고, ‘의인들의 집회’는 사랑한다고 합니다. 악인들의 집회를 미워한다는 말은, 악인들의 가치관을 혐오한다는 뜻이고, 의인들의 집회를 사랑한다는 말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경건한 애정을 사모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한 번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우리는 옳은 것을 갈망하는지? 혹시, 악인들의 가치관에 마음이 미혹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마음의 양심을 가차 없이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적어도 우리 안에 두 가지의 마음이 공존하면 좋겠습니다. 악인들의 가치관을 미워하는 마음과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경건한 애정을 사모하는 마음! 그렇다면, 우리도, 윤동주처럼 고백할 수 있을 겁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이런 마음이 하나님의 헤쎄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에 기대어 살아가는, 부족하지만 경건한, 의인의 마음이겠죠.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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