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의 과제]
ㅡ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기독교에서 삼위일체 신학에 기반을 둔 기독교로 거듭나기
기독교는 예수라는 사건의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기독교는 그 예수가 누구인지를 묻는 신학의 발전과 더불어 발전했다. 기독교의 토대는 신학이다. 특별히, 기독교는 삼위일체라고 하는 매우 독특한 하나님 이해에 기반을 둔 종교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세워져야 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울고 웃고 행동해야 한다.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 나는 이 문제를 놓아두고 참 많은 고민을 했다. 여러 현상적인 문제점이 아니라, 현재 경험하고 있는 불편한 현상들(보수화, 세습, 차별금지법반대, 반동성애, 성시화운동 등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여러 현상들)을 일으킨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이 많았다.
나는 삼대째 목회자로서 기독교에 매우 좋은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이유가 있지만, 기독교에 대하여 비판적 태도를 가지게 된 사건은 '세월호 사건'이었다. 그당시 나는 미국 조지아주의 한 시골 마을에서 목회하고 있었다. 304명의 무고한 아이들이 물속 생매장된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인 국가와 교회의 태도를 보면서, 국가란 무엇인지에 대하여 묻지 않을 수 없었고, 교회란 무엇인지에 대하여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전혀 위로와 안식을 전달해 주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을 사지로 내몰고 핍박하는 국가의 모습, 특별히 교회의 행태를 보면서 아주 깊은 절망을 느꼈다.
나는 그때부터 정치신학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 교회의 공공성에 대한 관심, 국가와 교회와의 관계 등 교회가 이 절망적인 사회/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를 분열시키고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면 교회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가에 대한, 교회의 존재론적 이유를 묻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정치신학에 대한 관심은 이제 어렴풋이 '왜 한국교회가 이지경이 되었는지'에 대한 그 근본적인 이유를 조금은 안 것 같다.
위에서 말했듯이,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학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래야 삼위일체 하나님이 신비 안에서 이 세상에 있으면서 이 세상에 머물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정치공동체로서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의한 일들, 그리고 우상에 대하여 저항하며 새로운 희망의 공간 열어주는 공공성을 담지한 교회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는 태생적으로 신학 위에 세워지지 못했다. 기독교가 한국에 전해진 시기는 구한말 극도의 정치적/사회적 혼란기였으며, 그 중에서 특별히 '민족주의'의 이념 아래 민족-국가(nation-state) 운동이 한국 사회를 뒤덮을 시기였다. 그렇다보니, 한국의 기독교는 태생적으로 민족주의에 기반을 두게 되었다.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한국 기독교는 그당시 한국 사회의 일제로부터의 독립과 민족국가로서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지만, 그 이후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한국교회는 오히려 한국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기독교는 보수적인 색체를 띨 수밖에 없다. 국가와 신앙을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설정하는 데 익숙해지고, 그렇다보니 국가에 대하여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기보다는 협력하는 '밀월관계'로 들어서기 쉽다. 이승만 정권 이후 한국 기독교는 계속하여 집권세력에 협조하는 보수적 색채를 띤 것은 그 이유 때문이다.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기독교는 교회의 구조와 생태 자체도 민족적인 색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교회가 하나의 '민족국가, 또는 민족집단'이 되다보니, 배타성을 짙을 수밖에 없고, 차별성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자신과 다른 '타자'는 모두 배제하는 논리가 들어설 수밖에 없다.
제국주의 아래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의 국민들이 식민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를 통해서 식민지배 시대에 알게 모르게 몸에 밴 식민성을 의식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연습을 하여 '노예근성'을 버려야만 하듯이, 민족주의에 기반을 두고 발전한 한국 기독교는 자기 자신이 현재 어떠한 상태인지를 거리두기를 통해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민족주의에 기반한 기독교에서 벗어나 '신학'에 기반을 둔 기독교로 거듭나야 한다. 이것은 한국 교회에 주어진 이 시대의 사명이다. 이 '회개'의 작업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한국 기독교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교회와 목회자들 사이에 암암리에 퍼져 있는 '신학 무용론'은 반드시 제거되어야만 하는 허탄한 신화이다. 기독교가 신학이 아닌 다른 것에 기반을 두고 있을 때, 기독교는 그 사회에서 공공성을 담지하지 못한다. 공공성을 잃은 집단은, 그것도 그것이 교회라면, 한 사회에서 어느 순간 불필요한 존재로서 외면당하고 퇴출당할 것이다.
특별히, 한국 기독교는 기독교의 독특한 하나님 경험인 삼위일체론에 대하여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위에 교회를 다시 세우는 작업을 반드시 해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경험은 교회가 이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환기시켜 주며,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동시에 사는 하나님 나라의 '정치시민'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하게 하여, 불의한 이들로 인하여 고통 속에서 실의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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